고대사

베네티: 베네치아와 브르타뉴의 이름을 남긴 고대의 두 민족

베네티(Veneti)는 같은 이름을 공유하는 두 개의 고대 민족을 가리킨다. 하나는 갈리아 계통의 민족으로 오늘날 프랑스 모르비앙(Morbihan) 지역에 거주하며 도시 반(Vannes)의 이름을 남겼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역에 살았으며, 도시 베네치아(Venezia)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이들은 이탈리아어파에 속하는 베네티어(베네토어)를 사용했다.

두 민족이 갈리아의 베네티와 같은 기원이라는 설이 자주 제기되어 왔다. 이 이론은 고유명사학(인명·지명 연구)에서 드러나는 언어적 유사성 등에 근거하지만, 이러한 공통점은 이탈리아어파와 켈트어파 사이의 가까운 친연 관계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언어학적 자료만으로는 어느 쪽 가설이 옳은지 단정하기 어렵다. 참고로 '베네티'라는 이름은 게르만족이 중부 유럽의 한 민족, 즉 훗날 슬라브화된 웬드(Wenden)를 부르던 명칭과도 동일하다.

기원에 관한 가설

언어학자 앙드레 마르티네(André Martinet)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제시했다.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베네티족은 기원전 3천년기 말부터 기원전 2천년기 초 무렵 오늘날 폴란드 일대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훗날 켈트어파, 이탈리아어파, 게르만어파, 슬라브어파로 갈라질 방언들이 아직 상당 부분 서로 소통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중 일부는 켈트인을 따라 서쪽으로 이주하여 완전히 켈트화되었고, 또 다른 일부는 이탈리아인들과 함께 남쪽으로 이동하며 그들의 언어적 영향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 남은 집단은 점차 게르만화되었고, 이후 슬라브족의 압력을 받아 기원후 5세기경 슬라브인과 융합된 것으로 보인다. 게르만족은 이후 남동쪽 이웃, 즉 이제는 슬라브가 된 이들을 '웬드(Wends)'라는 이름으로 계속 불렀다.

이탈리아의 베네티

이탈리아의 베네티(라틴어: Veneti, 고대 그리스어: Ἐνετοί Enetoi)는 베네토 지역에 거주했으며, 특히 말 사육으로 유명했다. 이들은 에우가네이(Euganei)족을 산간 지대로 몰아낸 것으로 전해지며, 이웃한 켈트족, 카르니(Carni)족, 이스트리아인, 리부르니(Liburni)족과 끊임없이 싸웠다.

기원전 3세기에는 로마의 동맹으로 기록되며, 제2차 포에니 전쟁 때는 로마군에 보조병력을 제공했다. 침략자가 다가오자 베네치아 석호의 섬들로 피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갈리아인에 맞서기 위해 로마와 동맹을 맺었고, 이후 로마의 패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2세기)에도 아드리아해의 섬들에서 그들의 흔적이 확인된다. 그들의 언어인 베네티어는 현재 수백 점의 비문을 통해 알려져 있다. 수도는 파도바(Padua)였으며, 당시 기록에 따르면 그들의 50여 개 도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한다.

갈리아의 베네티

아르모리카(Aremorica, 오늘날 브르타뉴)의 남부에는 켈트계 베네티가 거주하고 있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기』 3권 8장에서 이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방대한 함대와 널리 인정받는 해상 우위, 그리고 브리튼 섬과의 교역 관계 덕분에 베네티는 매우 강력한 민족이 되었으며, 그 권위는 갈리아 해안 전역과 브리튼 섬의 광범위한 지역에 미쳤다. 이들은 열리고 거친 바다 위에 서로 멀리 떨어진 소수의 항구를 보유했으며, 그 바다를 지나야 하는 거의 모든 항해자에게 공물을 바치게 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 전쟁기』 3권 8장

베네티는 훗날의 베네치아나 생말로처럼 강력한 해상·상업 세력이었다. 이들은 탄탄한 조직력을 갖추고 원로원을 두었으며, 특히 브리튼 제도와 이탈리아와의 무역을 담당하는 대규모 함대를 운영했다. 반(Vannes)과 오늘날 생말로 지역을 거점으로 삼은 이들의 무역망은 잉글랜드 도싯(Dorset) 주 본머스 근교의 헹기즈버리 헤드(Hengistbury Head)까지 뻗어 있었다. 이들은 로마인이 보르도를 통해 아르모리카로 운반한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아르모리카와 브리튼 섬에 유통했고, 대륙 반대편에서 들여온 주석·납·구리 외에도 이미 로마에서 잘 알려지고 사랑받던 아르모리카산 저장육과 정육 가공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아르모리카의 더 남쪽에는 루아르 강 하구에 살며 도시 낭트(Nantes)의 이름을 남긴 남네트(Namnètes)족이 있었다. 스트라본과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들을 '삼니테스(Samnites)'라고 불렀다. 남네트족은 오랫동안 베네티에 속한 단순한 부족 중 하나였다.

픽톤(Pictones)족은 베네티에 적대적이었다. 이들은 카이사르의 첫 원정 때부터 프로콘술 카이사르와 관계를 맺었고, 산톤(Santones)족 등 다른 갈리아 민족들과 함께 로마인에게 선박을 건조하거나 공급하여 베네티의 몰락을 도왔다.

기원전 56년, 다른 갈리아 민족들이 제공한 선박으로 편성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함대는 모르비앙 해전에서 베네티 함대를 궤멸적으로 격파했다. 전쟁이 끝난 뒤 베네티의 원로원 의원들은 처형되었고,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