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기병 두 개 중대가 사단 하나를 무너뜨리다 – 1939년 크라스노브루드 기습 전투

기병 두 개 중대가 사단 하나를 무너뜨리다 – 1939년 크라스노브루드 기습 전투

1939년 크라스노브루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파묻힐 수 있는 작은 교전이었다. 하지만 이 전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양측 모두 기병을 운용했고, 단 두 개의 폴란드 기병 중대가 독일 보병사단 하나를 상대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미 패배한 나라의 마지막 반격

1939년 9월 23일, 폴란드 침공의 대세는 이미 결정된 뒤였다. 서쪽에서는 독일군이, 동쪽에서는 소련군이 폴란드를 협공해 국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부 폴란드 부대들은 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저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 아침, 노보그루데크 기병여단은 현재의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위치한 도시 크라스노브루드(Krasnobród)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곳에는 독일 제8보병사단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크라스노브루드는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독일군은 참호 두 줄로 이루어진 방어선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다. 폴란드 기병여단은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어 병력이 크게 줄어든 상태였고, 수적으로도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었다. 원래 폴란드 기병여단은 약 7,000명의 병력에 장갑 부대와 포병, 대전차 부대, 그리고 3~4개의 울란(창기병) 연대를 보유하는 부대였지만, 당시 여단은 그 이름만 남은 실정이었다.

울란 기병의 돌격

폴란드 지휘부는 보흐단 스타비에르스키(Bogdan Stawierski) 대령이 지휘하는 제25울란연대를 공격의 선봉으로 지정했다. 대령은 독일군의 화력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두 개의 기병 중대를 서로 다른 지점에서 공격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오전 7시경, 제1중대가 기습처럼 말을 몰아 돌진했고 독일군은 완전히 발이 묶였다. 독일 보병은 도심 방향으로 패주했고, 폴란드 기병들은 검과 창을 휘두르며 그들을 끝까지 추격했다.

이어 타데우슈 게르레츠키(Tadeusz Gerlecki) 중위가 이끄는 제2중대가 공격에 나섰으나, 독일 제8사단 예하 기병대인 동프로이센 기병연대의 역돌격과 마주쳤다. 마치 옛 기사들의 시대가 되살아난 듯 격렬한 기병 간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자는 폴란드 기병이었다. 독일 기병마저 격파한 폴란드군은 적을 도시까지 추격했고, 시가지에서 독일군의 기관총 화망에 직면해 처참한 피해를 입었다.

믿기 힘든 승리

제2중대는 불과 30명만이 생존했으며, 용맹한 게르레츠키 중위 역시 전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단 두 개 중대에 불과한 폴란드 기병들은 도시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더 놀라운 것은, 독일 제8보병사단장 루돌프 코흐-에르파흐(Rudolf Koch-Erpach) 중장을 포함한 약 100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다는 사실이다. 폴란드군은 또한 독일군에게 붙잡혀 있던 동포 포로 40명을 구출해냈다.

이미 패배를 자각하고 있던 부대, 조국의 대부분이 점령당한 상황 속에서 단 두 개 중대의 기병이 오직 용기와 기습만으로 거둔 기적 같은 승리였다. 이 한 번의 전투만으로도 1939년 폴란드 군인들이 지닌 사기와 애국심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다만 양측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지금까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