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은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격동의 해였습니다. 그해 9월 20일, 요크 남쪽 풀퍼드(Fulford)에서 노르웨이 왕 하랄드 하르다라(Harald Hardrada)와 토스티 고드윈슨(Tostig Godwinson)이 이끄는 바이킹 군대가 잉글랜드 북부를 방어하던 머시아 백작 에드윈과 노섬브리아 백작 모카 형제의 군대와 충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풀퍼드 게이트 전투(Battle of Fulford Gate)로, 헤이스팅스 전투 이전에 벌어진 1066년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하르다라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압도적인 병력과 베테랑 부대
하르다라는 약 300척의 배에 실어 온 1만 명이 넘는 노르스(Norse) 군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콘스탄티노플 황실 근위대 출신 등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전사들이었습니다. 반면 에드윈과 모카가 소집한 잉글랜드군은 규모가 작았고, 왕국의 정예 부대인 후스칼(housecarl)보다는 훈련이 부족한 지방 민병대(fyrd)의 비중이 컸습니다.
유리한 지형과 전술적 우위
전투 당일 하르다라는 리버 오우스(River Ouse)와 습지대를 등진 지형을 활용해 좌우로 길게 뻗은 방어 진형을 구축했습니다. 전투 초반에는 잉글랜드군이 우세하게 밀어붙였지만, 하르다라는 예비 병력을 새로운 전선으로 투입해 적의 측면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백작들의 군대는 무너져 요크 성으로 후퇴했고, 며칠 뒤 도시는 노르스군에 항복했습니다.
짧았던 승리 — 스탬퍼드 브리지의 최후
그러나 하르다라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풀퍼드의 소식을 접한 잉글랜드 왕 해럴드 2세(Harold II)는 놀라운 속도로 북진하여, 9월 25일 요크 동쪽의 스탬퍼드 브리지(Stamford Bridge)에서 준비되지 않은 노르스군을 기습했습니다. 하르다라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군대는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결국 하르다라의 1066년 원정은 풀퍼드에서의 화려한 승리로 시작해 스탬퍼드 브리지에서의 몰락으로 끝났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연이은 전쟁은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북부 원정으로 지친 해럴드 2세의 군대는 남하하자마자 또 다른 침입자, 즉 노르망디 공 윌리엄과 헤이스팅스에서 조우해야 했고, 지친 왕의 군대는 결국 패배하며 잉글랜드의 운명은 노르만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