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재위 1894~1917)는 독실한 개혁가도,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절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모든 개혁 시도에 저항한 보수적 전제군주였습니다.
권력 독점에 집착한 보수적 전제군주
니콜라스 2세는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905년 혁명 이후 국가두마(의회) 설립이라는 형식적인 양보를 하긴 했지만, 두마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자 여러 차례 해산시키고 선거법을 조작하여 의회의 힘을 무력화했습니다. 그는 입헌 군주제로의 이행을 끝까지 거부하며 '차리즘(황제 전제주의)'을 고수했습니다.
정치적 반대 세력과 이견에 대한 탄압
그의 정부는 정치적 반대파와 비판적 여론을 철저히 억압했습니다. 비밀경찰 오흐라나(Ohrana)를 통해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체포했으며,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했습니다. 특히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 평화롭게 시위하던 노동자들에게 발포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고, 이후 스톨리핀 총리 시기에는 대규모 처형과 시베리아 유배가 자행되어 이 시기는 '스톨리핀 넥타이'라는 이름으로 조롱받기까지 했습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통치
니콜라스 2세의 통치 아래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치적 탄압뿐 아니라 반유대인 포그롬(집단 학살)에 대한 방관,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중 그가 직접 군 최고사령관으로 나서 감행한 무능한 전쟁 지휘는 수많은 병사와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이러한 전제 통치와 무능함은 누적된 국민의 분노로 이어졌고, 1917년 2월 혁명으로 그의 퇴위와 함께 로마노프 왕조는 300년 역사에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