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디엔비엔푸의 끝나지 않는 공방전

끊임없는 공방전

디엔비엔푸의 끝나지 않는 공방전

3월 30일 밤, 격렬한 포격 준비와 '엘리안(Eliane)' 고지 아래 매설된 지뢰의 폭발에 이어, 베트민 제312사단과 제316사단은 '도미니크(Dominique)'와 '엘리안'을 이루는 다섯 개의 언덕을 맹공격했다. 이어진 전투는 무려 4일간 계속되었으며, 그동안 공격과 역공격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반복되었다.

4월 2일에는 제308사단이 '위게트(Huguette)'를 공격했고, 비가르(Bigeard) 대령은 베트민군을 몰아내며 적에게 800명의 손실을 안기는 역공을 성공적으로 감행했다. 또 다른 공격으로 '엘리안'의 거점 하나를 되찾았지만, 수비대의 사기는 여전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방어선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자프(Giap) 장군은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감수하고 있었지만, 프랑스군 진지에 대한 거의 자살에 가까운 공격을 감행하는 데에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었다. 디엔비엔푸(Diên Biên Phû)는 이미 세계 각국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 되었고, 제네바에서 열리던 회담은 5월 8일부로 인도차이나 문제를 공식 의제에 포함시켰다. 만약 자프가 그 날짜보다 먼저 디엔비엔푸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회담에 참석한 베트민 협상단은 극도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었다.

종말이 가까워지다

5월 1일 밤 10시, 베트민은 마침내 총공세를 개시했다. 프랑스군에게 남은 것은 사흘분의 식량과 155mm 포탄 275발, 105mm 포탄 14,000발, 120mm 박격포탄 5,000발에 불과했다. 공격의 화살은 '클로딘(Claudine)'과 '도미니크'의 잔존 진지, 그리고 '엘리안'의 쌍둥이 언덕으로 향했다.

5월 6일, 자프는 카츄샤(Katyusha) 로켓포를 투입했다. 그 순간 프랑스군은 다연장 로켓 발사대가 실린 차량 소리를 지원 부대가 도착하는 소리로 착각하기도 했다. 5월 7일 새벽녘, 기지는 한 변이 약 800m에 불과한 좁은 사각형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비가르는 포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최후로 남은 전차 한 대를 이용해 역공을 조직했는데, 이 전차를 지휘한 에르부에(Hervouët) 대위는 골절된 팔에 붙어 있던 석고붕대를 그 자리에서 뜯어낸 채 전투에 임했다.

55일간의 포위전 끝에 디엔비엔푸는 함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총 16,544명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겨우 3,000명에 불과했다. 3,000명 이상이 전투 중에 전사했고, 또 다른 10,000명은 포로수용소로 향하는 강제 행군 도중이나 이후 이어진 '재교육' 기간에 목숨을 잃었다.

베트민 역시 8,000명이 전사하고 15,000명이 부상당하는 처참한 희생을 치렀지만, 자프는 마침내 제네바의 정치 협상단에게 값비싼 승리를 선물할 수 있었다. 이 승리는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에 종언을 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