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가 바로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훗날의 '정복자 윌리엄'이 앵글로색슨 왕조의 마지막 왕 해럴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의 눈을 화살로 꿰뚫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극적인 장면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역사적 증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예 타페스트리가 보여주는 것
이 이야기의 주요 출처는 11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예 타페스트리(Bayeux Tapestry)입니다. 타페스트리에는 눈 부위에 화살이 꽂힌 인물과 노르만 기사에게 칼을 맞아 쓰러지는 또 다른 인물이 나란히 묘사되어 있으며, 그 근처에 'HAROLD'라는 명칭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인물 중 어느 쪽이 해럴드인지, 혹은 둘이 함께 하나의 연속 장면을 구성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19세기 복원 작업 과정에서 자수 선이 수정되면서 원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생겼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동시대 기록마저 서로 엇갈린다
전투 직후 집필된 당대 문헌들조차 해럴드의 최후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 않습니다.
주미에주의 윌리엄(William of Jumièges)은 윌리엄 공작이 해럴드를 직접 죽였다고 기술했지만, 포아티에의 윌리엄(William of Poitiers)은 구체적인 죽음의 방식을 상세히 남기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미앵의 기(Guy of Amiens)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헤이스팅스 전투의 노래』는 해럴드가 기사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칼에 찢기듯 살해당했다고 서술합니다. 즉, '화살'이라는 요소 자체가 당대 기록 어디에도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신화가 남은 이유
'눈에 꽂힌 화살'이라는 이미지는 한 왕의 비극적 최후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기에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이후 수백 년간 역사서와 교과서, 대중문화가 이 장면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면서 사실처럼 굳어졌고, 오늘날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역사가들이 말하는 결론
해럴드 왕이 1066년 10월 14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죽었는지—화살에 맞았는지, 적병의 칼에 쓰러졌는지—는 여전히 추측의 영역에 남아 있습니다. '화살에 맞은 왕'이라는 유명한 이야기는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시간이 흐르며 만들어진 강력한 역사적 이미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