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웨스트서식스주에 우뚝 선 아룬델 성(Arundel Castle)은 11세기 노르만 시대에 건설된 이후 9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잉글랜드 역사의 무대가 되어 온 곳입니다.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퍽 공작가(하워드 가문)가 소유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가문이 실제로 거주하는 드문 성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만큼 이곳과 인연을 맺은 왕족과 귀족의 명단도 매우 화려합니다.
아룬델 성의 주인들: 피츠앨런과 하워드 가문
헨리 피츠앨런(Henry Fitzalan), 제12대 아룬델 백작(1512~1580)
튜더 왕조 시대의 대표적인 귀족으로, 상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잉글랜드 대궁내경(Lord High Steward) 등 국가 요직을 두루 맡았습니다. 그의 외손자가 아룬델 백작위를 이으면서 성이 하워드 가문의 손에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필립 하워드(Philip Howard), 제13대 아룬델 백작(1557~1595)
헨리 피츠앨런의 외손자로 아룬델 백작위를 계승한 인물입니다. 천주교 신앙을 끝내 버리지 않다가 반역죄로 투옥되어 1595년 생을 마감했으며, 훗날 순교자로 시성되는 등 영국 가톨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토머스 하워드(Thomas Howard), 제21대 아룬델 백작(1585~1646)
필립 하워드의 아들이자, 17세기 잉글랜드 최고의 미술 수집가이자 예술 후원자로 이름난 인물입니다. 그가 모은 방대한 컬렉션은 당대 유럽을 놀라게 했으며, 오늘날 아룬델 성 내부 장식과 소장품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헨리 하워드(Henry Howard), 노퍽 공작(1628~1684)
토머스 하워드의 손자로, 잉글랜드 내전 이후 몰수되었던 노퍽 공작 작위를 되찾은 인물입니다. 천주교 신앙을 지켰으며, 당시 개신교 왕정과 얽힌 여러 정치적 음모에 연루되기도 했습니다.
왕실과 얽힌 인연들
프레더릭(Frederick), 웨일스 공(1707~1751)
조지 2세의 장남이자 왕세자였던 그는 어린 시절 아룬델 성에서 지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아들이 훗날 조지 3세로 즉위하면서, 그 자손들도 한동안 이 성과 깊은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윌리엄(William), 글로스터 공작(1743~1805)
프레더릭 왕세자의 아들이자 조지 3세의 동생으로, 어린 시절 아룬델 성에서 보낸 시기가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타(Augusta),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부인(1737~1813)
프레더릭 왕세자의 딸이자 조지 3세의 누이로,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에게 시집갔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아룬델 성에서 지낸 시기가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버클리(Elizabeth Berkeley), 버클리 백작부인(1739~1828)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녀로, 남편인 제4대 버클리 백작과 함께 아룬델 성에서 생활했습니다.
샤를로테(Charlotte), 뷔르템베르크 왕비(1766~1828)
조지 3세의 장녀로, 어린 시절 아룬델 성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훗날 뷔르템베르크 왕비가 되었습니다.
에드워드(Edward), 켄트 앤 스트래선 공작(1767~1820)
조지 3세의 아들로, 어린 시절 아룬델 성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의 딸이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인물입니다.
어거스터스 프레더릭(Augustus Frederick), 서식스 공작(1773~1843)
조지 3세의 아들로, 어린 시절 아룬델 성에서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윌리엄 4세(William IV, 1765~1837)
조지 3세의 아들이자 훗날 영국의 국왕이 된 인물로, 어린 시절 아룬델 성에서 보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밖의 저명한 귀족들
찰스 레녹스(Charles Lennox), 제1대 리치몬드 공작(1672~1723)
국왕 찰스 2세의 서자로 태어나 군 지휘관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아일랜드 총독(Lord Lieutenant of Ireland) 등 요직을 역임했습니다.
조지 피츠로이(George FitzRoy), 제1대 노섬벌랜드 공작(1665~1716)
역시 찰스 2세의 서자로, 뛰어난 군 지휘관이었으며 아일랜드 총독을 지냈습니다.
헨리 찰스 피츠로이(Henry Charles FitzRoy), 제5대 그래프턴 공작(1790~1863)
상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해군 제1경(First Lord of the Admiralty)을 지낸 저명한 귀족입니다.
조지 그랜빌 르베슨고어(George Granville Leveson-Gower), 제1대 서덜랜드 공작(1758~1833)
상원 의원으로 활동했고 서덜랜드 총독(Lord Lieutenant of Sutherland)을 역임한 인물로, 당대 가장 부유한 귀족 중 한 명이었습니다.
마무리
이처럼 아룬델 성은 단순한 중세 유적이 아니라, 백작과 공작, 왕족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종교 분쟁과 왕정의 변천을 함께 겪어 온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오늘날에도 노퍽 공작가가 거주하면서 일부 구역을 일반에 공개하고 있어, 성을 직접 둘러보며 이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