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했지만, 자식 없이 생을 마감한 여왕
'메리 튜더는 처녀로 죽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말하자면, 잉글랜드 최초의 여군주 메리 1세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와 정식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처녀'로 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한 명도 없었고, 메리는 몇 차례 임신 징후를 보였으나 모두 가짜 임신으로 판명되면서 후계자를 얻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또한 남편 펠리페 2세는 대부분의 기간을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 자신의 영토에서 보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명목상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메리가 사망할 당시에도 펠리페는 그곳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블러디 메리'라는 별명의 유래
메리 튜더가 역사에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는 무서운 이름으로 남은 이유는 종교 박해 때문입니다. 그녀는 아버지 헨리 8세가 시작한 종교 개혁을 뒤집고 가톨릭을 재건하는 데 평생을 바쳤으며, 이 과정에서 1553년부터 1558년까지 약 5년간의 가톨릭 부흥기 동안 약 300명에 달하는 이단, 즉 개신교 신자들을 화형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강압적인 종교 정책은 오히려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녀 사후 이복동생인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하면서 잉글랜드는 다시 개신교 국가로 돌아서게 됩니다.
여왕의 죽음, 원인은 자궁암
메리 1세는 1558년 11월 17일,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자궁암으로 추정되며, 일부 학자들은 난소암 가능성이나 당시 런던을 휩쓴 독감 유행병이 그녀의 건강을 급격히 악화시켰다고 보기도 합니다.
참고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남편 펠리페 2세가 메리보다 먼저 죽은 것은 아닙니다. 펠리페 2세는 1598년까지 40년 가까이 더 살아남았으며, 메리 사후에는 프랑스 왕녀 발루아의 엘리사베트와 재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메리 튜더는 배우자는 있었으나 자식도, 진정한 동반자도 없이 고독하게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