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로 전투(1862년 4월 6~7일)는 미국 남북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 이틀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23,700명 이상의 군인이 사망, 부상, 실종되었습니다.
- Albert Sidney Johnston 장군과 William J. Hardee 장군이 전투에서 사망하여 남부군의 지도력이 약화되었습니다.
- 연방 사령관인 Ulysses S. Grant와 William T. Sherman은 Robert E. Lee와 Thomas J. "Stonewall" Jackson과 맞먹는 지도자로 떠올랐습니다.
전략적 영향:
- 남군이 전장에서 후퇴하면서 북군은 중요한 철도 교차점인 미시시피 주 코린트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 미시시피 강과 그 지류에 대한 연합의 통제로 인해 남부 연합 선박에 대한 봉쇄가 강화되어 경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샤일로는 연합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전쟁 노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남북전쟁에 미친 영향:
- 실로는 서부 전선에서 연방이 우위를 점하면서 전쟁의 변화를 알렸습니다.
- 이는 뉴올리언스 점령과 빅스버그 캠페인을 포함하여 미래 연합의 성공을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 샤일로는 또한 향후 전투에서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참호 사용과 같은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도록 연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파 논란:
- 전투의 여파로 인해 연합군이 입은 사상자 수가 너무 많아 그랜트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습니다.
- 그랜트는 전투 중 과음을 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조사를 통해 대부분 무죄로 밝혀졌습니다.
기존:
- 실로의 유산에는 연방에 유리하게 남북 전쟁의 과정을 재편성한 주요 전투로서의 위치가 포함됩니다.
- 이 중대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는 현재 실로 국립군사공원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