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 정복을 기뻐한 로마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로마인들은 훈족에게 정복당한 것을 기뻐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통념입니다. 현존하는 고대 문헌 어디에도 훈족의 침입을 환영하거나 그 지배를 받아들이길 바란 로마인의 기록은 없으며, 오히려 모든 동시대 자료는 훈족을 공포와 파괴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로마인에게 훈족은 '종말' 그 자체
훈족은 4세기 후반 흑해 북쪽 초원에서 서쪽으로 밀려온 유목 기마 민족입니다. 370년대 동고트 왕국을 무너뜨린 것을 시작으로 도나우 강변의 로마 국경을 끊임없이 압박했습니다. 훈족의 남하를 피해 도망친 게르만 부족들이 로마 영내로 밀려들면서 게르만 대이동이 촉발되었고, 이는 결국 서로마 제국 멸망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5세기 중반 아틸라(재위 434~453년) 시대에 위협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아틸라는 동로마 제국에서 막대한 공물을 뜯어냈고, 451년 갈리아 침공 당시 카탈라우눔 전투(샬롱 전투)에서 서로마와 서고트 연합군에 의해 겨우 저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그는 이탈리아 북부를 유린하며 번영하던 도시 아퀼레이아를 완전히 파괴했고, 이 참화를 피해 도망친 주민들이 석호 위에 베네치아를 세웠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동시대인들은 훈족을 이렇게 기억했다
4세기 후반의 역사가 아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훈족을 극도로 잔혹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했으며, 당시 기독교 작가들은 훈족의 출현을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재앙, 곧 '신의 응징'으로까지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아틸라는 "신의 채찍"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이는 훈족이 로마인들에게 얼마나 두려운 대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
흥미롭게도 오해의 씨앗이 될 만한 일화는 하나 있습니다. 449년경 비잔티움의 외교관 프리스쿠스는 아틸라의 궁정을 방문했을 때, 헝가리 평원에서 훈족과 함께 사는 그리스계 출신 전직 로마 상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로마의 과중한 세금과 부패한 관료제보다 훈족 사회에서의 생활이 더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 한 명의 선택일 뿐이며, "로마인들이 훈족 정복을 환영했다"는 결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당시 제국 행정의 부패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이긴 하지만, 훈족의 침입 자체는 로마인들에게 언제나 두려움과 파괴의 대상이었습니다.
결론
요컨대 훈족은 로마 제국에게 '정복당해도 좋은 존재'가 아니라 제국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던 최악의 적이었습니다. "기뻐한 로마인이 있었다"는 주장은 신뢰할 만한 사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