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본드 헤드 경(Sir Francis Bond Head, 1793~1875)은 1837년 상캐나다(어퍼 캐나다) 반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1836년 1월 상캐나다 부총독(Lieutenant-Governor)으로 부임하여 1838년까지 재직하면서, 반란의 원인을 만든 정책과 반란 진압 작전 양쪽 모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반란의 불씨를 지핀 통치
헤드는 부임 초기에는 개혁파와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곧 보수 엘리트 집단인 '패밀리 컴팩트(Family Compact)' 편에 섰습니다. 그는 개혁파 인사들을 행정평의회에서 해임했고, 1836년 총선거에서는 직접 선거 운동에 나서 개혁파 후보들을 공격했습니다. 그 결과 온건 개혁파마저 정치적으로 소외되었고, 이는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William Lyon Mackenzie)가 이끄는 급진 세력이 무장 봉기를 선택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몽고메리 여관 전투의 승자
1837년 12월, 매켄지의 반군이 토론토 장악을 노리고 봉기했을 때, 헤드는 정규군 대부분이 하캐나다(로어 캐나다) 반란 진압에 파견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민병대와 의용병 약 1,000명을 신속히 소집했고, 직접 병력을 지휘하여 12월 7일 몽고메리 여관(Montgomery's Tavern) 전투에서 반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승리 덕분에 반란은 확산되지 못하고 며칠 만에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평가
일부 역사학자들은 헤드의 무능하고 권위적인 통치 방식 자체가 반란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비판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단순한 '진압자'가 아니라, 자신의 정책으로 반란을 초래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평가하든, 헤드가 1837년 반란의 발생과 진압 양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인물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