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오해: 팔랑크스 공격에 이은 기병 돌격?
많은 사람들이 가우가멜라 전투(기원전 331년)를 '마케도니아 팔랑크스가 먼저 공격하고, 이어서 기병대가 돌격해 승리했다'는 식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릅니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팔랑크스 공격에 이은 기병 돌격 같은 순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승리를 결정지은 것은 알렉산드로스의 기병 돌격
이 전투의 승패를 가른 주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직접 지휘한 마케도니아 헤타이로이(Companion) 기병대였습니다. 전투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우익에 배치된 헤타이로이 기병대를 이끌고 페르시아군의 좌익을 향해 돌진하여 적 기병을 격파했습니다. 페르시아 좌익 기병이 알렉산드로스의 우익을 포위하려고 병력을 계속 우측으로 돌리면서, 페르시아 중앙 진형에는 자연스럽게 빈틈이 생겼습니다.
결정적 순간: 중앙 돌파
알렉산드로스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헤타이로이 기병대를 이끌고 방향을 틀어 페르시아 중앙으로 쐐기처럼 파고들었고, 도주하던 전차 부대와 경기병을 추격하여 공격했습니다. 다리우스 3세의 지휘부가 직접 위협받자 다리우스는 전장에서 이탈했고, 이것이 페르시아군 붕괴의 신호가 되었습니다.
팔랑크스의 역할은 '버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팔랑크스는 무엇을 했을까요? 팔랑크스는 공격의 선봉이 아니라, 정면에서 페르시아 중장보병의 공세를 막아내며 진형을 유지하는 방어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전투 중반에는 인도·페르시아 기병이 마케도니아군 진형 사이의 빈틈으로 파고들어 팔랑크스 후방을 위협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팔랑크스는 극심한 압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텼습니다.
사료에는 팔랑크스 선공 기록이 없다
아리아노스, 플루타르코스, 디오도로스 등 가우가멜라 전투를 기록한 어떤 사료도 이 전투에서 팔랑크스가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즉, '팔랑크스 공격 → 기병 돌격'이라는 순서는 후대의 잘못된 재구성일 뿐입니다.
정리
가우가멜라의 승리는 팔랑크스의 돌격이 아니라, 알렉산드로스의 과감한 기병 운용과 정확한 타이밍 포착 덕분이었습니다. 팔랑크스는 정면을 버티며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했고, 승부를 낸 것은 헤타이로이 기병대의 결정적 돌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