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가른 중세의 흙성, 오파 제방(Offa's Dyke)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레이트브리튼 섬에 세워진 유명한 성벽을 논할 때, 서기 2세기 피クト족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하드리아누스 성벽(Hadrian's Wall)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로부터 약 20년 뒤 세워진 안토니누스 성벽(Antonine Wall)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인이 아닌 중세 앵글로색슨족이 쌓았으며,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으나 아쉽게 탈락한 '제3의 성벽'이 존재합니다. 바로 오파 제방(Offa's Dyke)입니다.

역사 속 '장벽'의 계보와 오파 제방의 위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 장벽을 제안하며 역사의 학생임을 자처했듯, 이방인의 출입을 막는 장벽의 역사는 깊습니다. 이스라엘의 서안 지구 장벽, 모로코의 사하라 장벽, 베를린 장벽(이 경우는 탈출 방지), 크로아티아 스톤의 성벽, 그리고 만리장성까지 그 사례는 다양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광활한 영토를 가로지르는 반면(만리장성 21,000km, 모로코 장벽 2,720km), 브리튼 섬의 성벽들은 비교적 완만한 지형 덕분에 더 실질적인 경계선 역할을 했습니다.

  • 하드리아누스 성벽: 솔웨이 만에서 타인 강 어귀까지 약 117km, 섬을 동서로 양분.
  • 안토니누스 성벽: 하드리아누스 성벽과 평행하게 약 160km, 국경(라임스)을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까지 북상시킴.

하지만 오파 제방은 이들과 확연히 달랐습니다.

  1. 재료: 돌이 아닌 흙(아도비/토축)으로 축조.
  2. 주체: 로마인이 아닌 8세기 앵글로색슨 7왕국(헵타르키) 중 하나인 머시아 왕국(Mercia).
  3. 방향: 동서가 아닌 남북으로 뻗어, 머시아(동쪽)와 켈트계 브리튼 왕국인 포위스(Powys, 서쪽)의 경계를 이룸.

거대한 토목 공사의 실체

오파 제방은 길이 약 150마일(약 240km), 너비 최대 12m, 높이 1.5m에 달하는 대공사였습니다. 리버풀 만에서 세번 강 어귀까지 이어지며, 서쪽(웨일스 쪽)에 해자(垓子, moat)를 둔 점으로 미루어 웨일스인의 약탈을 막기 위한 방어 시설임이 분명합니다. 이는 상호 합의된 국경이라기보다 일방적 방어선이었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현재 잉글랜드-웨일스 국경선도 이 제방과 유사한 경로를 따릅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가른 중세의 흙성, 오파 제방(Offa s Dyke)
오파 제방의 대략적 경로와 지형적 특징

오파 왕: 화폐 개혁가에서 '앵글인의 왕'까지

제방의 이름은 757~796년 재위한 머시아의 오파 왕(Offa)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성벽을 쌓은 군주를 넘어:

  • 최초로 페니(Penny) 은화를 주조해 화폐 제도를 개혁함.
  • 험버 강 이남 잉글랜드 대부분을 장악, Rex Anglorum(앵글인의 왕) 칭호를 사용하며 10세기 통일 왕국의 선구자적 위상을 가짐.
  • 샤를마뉴 대제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자녀 혼인을 추진(성사되진 않음)하는 등 국제적 위상을 떨침.

그는 760년 헤레포드 전투를 비롯해 778, 784, 796년 웨일스 원정을 거듭했으며, 제방 축조에는 봉건제도하 농노들의 의무 노동(코르베, corvée)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논란의 중심: '오파가 정말 쌓았는가?'

전통적으로 오파의 업적으로 알려졌으나, 현대 과학은 이를 뒤집었습니다.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의 충격

  • 1999년 분석: 토양 시료에서 446년 경으로 추정되는 결과 도출 (오파 재위 300년 전).
  • 2014년 추가 분석: 타 구간에서 430년, 541~651년 사이로 추정되는 결과 확인.

이는 제방의 일부가 최소 5세기 중반, 로마 철수 직후 또는 아서 왕 전설의 시대(아마도 실존했다면)로 거슬러 올라감을 시사합니다.

사료적 해석의 충돌

  • 에우트로피우스의 기록(369년): 세프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성벽이라 기록했으나, 실제로는 안토니누스 성벽 보수였음. 일부 학자는 이 기록이 오파 제방의 초기 단계를 묘사한 것이라 주장하나, 다수 고고학자는 연대 차이(세베루스 재위 193~211년)를 들어 반박.
  • 베다 베네라빌리스(Bede the Venerable): 8세기 초 저서 앵글로족 교회사에서 세베루스 성벽을 '흙으로 쌓고 나무 울타리를 세웠으며 해자가 있다'고 묘사했는데, 이는 돌로 쌓은 로마 성벽이 아닌 오파 제방의 특징과 정확히 일치함.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가른 중세의 흙성, 오파 제방(Offa s Dyke)
흙으로 쌓아 올린 제방과 서쪽 해자의 단면 구조 상상도

누가, 왜, 언제 쌓았나? 학계의 가설들

이처럼 이른 연대가 사실이라면 두 가지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1. 로마인 기원설: 로마 말기 또는 아서 왕 시기의 브리튼인들이 국방선으로 구축.
  2. 머시아 왕들의 누적 축조설: 오파 한 사람이 아닌, 선대 왕들(예: 에셀발드 Æthelbald의 '왓 제방 Wat's Dyke' 등)이 구간별로 쌓고 오파가 이를 연결·확장.

그럼 왜 '오파 제방'이라 불릴까요? 9세기 후반 웨일스 출신 수도사이자 알프레드 대왕 궁정 학자였던 아세르(Asser)가 저서 알프레드 대왕전(Life of King Alfred)에서 "오파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제방을 쌓았다"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키릴 폭스(Cyril Fox), 프랭크 스텐턴(Frank Stenton) 등 역사가들은 이를 회의적으로 보았습니다. 제방이 자연 지형(강, 산릉)이 방어 역할을 하는 구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불연속적'), 나무 울타리(보존 안 됨)로 보완되었을 가능성(프랭크 노블, 데이비드 힐 주장)도 있습니다.

존 데이비스(John Davies) 등은 제방 노선이 특정 모서리를 피하는 점을 들어, 웨일스 측과 협의해 땅을 양보한 흔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흙으로 된 유구는 풍화·침식으로 대부분 소실되어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가른 중세의 흙성, 오파 제방(Offa s Dyke)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제방의 잔존 구간

오늘날의 오파 제방: 걷는 역사, 오파 제방 길

일부 구간은 보존을 위해 매장된 채 발굴이 유보되어 있으나, 많은 구간은 '오파 제방 길(Offa's Dyke Path)'로 정비되어 있습니다. 1971년 개장한 이 트레일은 영국 최장 거리 도보 여행길 중 하나로, 총 길이 약 283km에 달합니다. 세번 강 어귀 세드버(Sedbury, 첩스토 인근)에서 북웨일스 해안 프레스타틴(Prestatyn)까지 이어지며, 나이트턴(Knighton)에는 방문자 센터가 있어 가장 선명한 제방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가른 중세의 흙성, 오파 제방(Offa s Dyke)
국립 트레일로 지정된 오파 제방 길 표지판과 주변 풍경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가른 중세의 흙성, 오파 제방(Offa s Dyke)
오파 제방 길 전체 노선도
잉글랜드와 웨일스를 가른 중세의 흙성, 오파 제방(Offa s Dyke)
오파 제방 축조 기록을 남긴 아세르의 알프레드 대왕전 필사본

오파 제방은 단순한 경계선을 넘어, 로마 철수 후 혼돈기 브리튼 섬에서 앵글로색슨족과 켈트족(웨일스인) 간의 세력 다툼, 그리고 중세 초기 거대 토목 기술과 왕권의 자원 동원 능력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누가 쌓았는가'라는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그 거대한 흙더미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