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이탈리아 북부 노체토(Noceto) 마을 인근 작은 언덕에서 독특한 목조 구조물이 발굴되었습니다. 주로 참나무로 건설된 이 유적은 바스카 보티바(Vasca votiva), 즉 '봉헌용 저수조'로 불리며, 정확한 용도와 건립 시기는 오랫동안 고고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연구자들은 이 유적을 중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600년~1300년 사이로 추정해 왔습니다.
300년이라는 오차가 좁아 보일 수 있지만, 고고학적으로 이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문명과 아이패드를 생산한 문명을 비교하는 것에 버금가는 거대한 시간적 격차입니다.
코넬 대학교 고전 예술·과학 교수 스튜어트 매닝(Sturt Manning)이 이끄는 연구팀은 연륜연대기와 '위글 매칭(wiggle matching)'이라 불리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기법을 결합해, 95%의 신뢰수준으로 정확한 건립 연도를 특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분석 결과, 구조물의 두 핵심 부분인 하부 저수조는 기원전 1444년, 상부 저수조는 기원전 1432년에 각각 건설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오차 범위는 단 4년에 불과합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바스카 보티바가 사회 변화의 결정적 전환기에 세워졌으며, 이 구조물이 초자연적인 물 의식에 사용되었다는 이탈리아 연구자들의 가설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연구 논문은 6월 9일 국제 학술지 PLOS ONE에 게재되었습니다.
위글 매칭은 고대 목재의 나이테에 기록된 방사성탄소 동위원소 패턴을 세계 다른 지역에서 수집된 데이터와 대조·일치시켜 연대를 측정하는 기법입니다. 이를 통해 특정 수종과 지역에 대한 연속적인 나이테 기록이 없더라도 초정밀 연대 측정이 가능합니다.
"고고학 유적지에서는 비교적 적은 수의 샘플로 연륜연대기를 구성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샘플은 이미 지난 3,500년 동안 분해된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현재 자연에서 자라는 건강한 나무와 조건이 같을 수 없죠." 매닝 교수는 말하며,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신호를 추출하기 위해 샘플을 여러 번 반복 측정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노체토의 바스카 보티바는 길이 약 12m, 너비 약 7m, 깊이 약 4m에 달하지만, 처음에는 실제 깊이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현장 발굴이 완료되면서 연구자들은 구조물 아래에 두 번째 저수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저수조는 먼저 건설되었으나 완공 전에 붕괴되었고, 같은 자재를 공유하는 두 저수조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경과했는지는 불분명했습니다.
구조물의 웅장한 규모와 막대한 목재를 언덕 부지까지 운반해야 했던 어마어마한 노동량을 고려할 때, 이탈리아 연구자들은 바스카 보티바가 당대 최대 규모의 건설 사업이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 용도에 대한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었기에 코넬 대학교 연륜연대학 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매닝 팀은 다양한 샘플로 여러 차례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노체토 유적의 목재는 나이테 배열 기준으로 보기 드물게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샘플이 국제 방사성탄소 보정 곡선과 맞지 않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이는 특정 시기의 곡선 수정이 필요하다는 신호였고, 2020년 새 버전의 곡선이 게시되면서 노체토 데이터는 마침내 정상적으로 정렬되었습니다.
독일 남부, 아일랜드, 북미 전역의 연륜연대기에 걸쳐 보정된 방사성탄소 연대측정과 컴퓨터 집약적 통계 분석을 결합한 끝에, 코넬 연구팀은 수백 년에 걸친 나이테 기록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부 저수조와 상부 저수조의 건설 시기를 각각 기원전 1444년과 1432년으로 추정했으며, 완성된 구조물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버려지기 전까지 수십 년간 사용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새롭게 확정된 연대기는 이탈리아 선사시대의 격변기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생활 방식 속에서 정착지 수는 줄고 규모는 커졌으며, 국제 무역과 직물 제조 같은 전문화가 늘고 매장 관습도 변화하는 추세였습니다." 매닝 교수는 말했습니다. "사회 조직에 큰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실용적 목적보다 상징적 의미가 큰, 이른바 '불필요한 기념물'이 세워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최초의 국가가 탄생하면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영국 남부의 큰 변화기에는 스톤헨지가 세워졌죠. 노체토는 스톤헨지만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중요한 장소를 만드는 행위'라는 점에서 몇 가지 유사점을 공유합니다."
이 구조물은 도시 중심지가 아닌 언덕 위에 자리했기 때문에 단순한 저수지나 우물로 사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조물을 채운 부드러운 퇴적층과 물길(운하)의 부재는 이곳이 관개용이 아니었음을 시사합니다. 더욱이 연구자들은 수많은 도자기 그릇, 조각상, 돌·나무·유기물 등이 내부에 의도적으로 봉헌된 대규모 유물군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든 증거는 이 구조물이 물과 관련된 일종의 초자연적 의식에 사용되었음을 강력히 뒷받침합니다.
"제물을 올려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의 반사면을 통해 하늘과 땅, 그리고 비(雨)로 이어지는 하늘과 물의 연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매닝 교수는 덧붙였습니다.
포 평야 남쪽 가장자리의 인근 정착지는 제방과 계단식 논으로 조성되어 있었고, 이 지역은 정교한 물 관리 덕분에 농업적으로 매우 생산적인 땅이었습니다. 물은 건설자들의 삶과 농업의 모든 측면에서 분명 핵심적인 존재였던 것입니다. 적어도 한동안은요.
"기원전 1200년경, 이 지역의 사회·경제 시스템 전체가 붕괴했습니다. 기후가 크게 건조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매닝 교수는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