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피라미드보다 500년 앞선 바레인 바르바르 사원, 길가메시가 실제로 방문했을까?

페르시아만 한가운데 떠 있는 군도 국가 바레인. 가장 큰 섬조차 길이 55km, 폭 18km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26km 길이의 다리로 연결된 이 땅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신전 중 하나가 잠들어 있습니다.

고대 바레인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계곡을 잇는 해상 항로의 요충지였습니다. 수메르 설형 문자판에는 이곳이 '처녀처럼 깨끗한 땅', 즉 딜문(Dilmun)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웅 길가메시가 질병 없이 늙지 않는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찾았다는 낙원이 바로 이곳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딜문 낙원 전설이 널리 알려진 에덴 동산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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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랫동안 이 문명은 신화 속에만 존재했습니다. 바레인 땅에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54년, 덴마크 고고학자 페테르 빌헬름 글로브(Peter Vilhelm Glob)가 본섬 북쪽, 디라즈(Diraz)와 얀누산(Jannusan) 사이의 바르바르(Barbar) 마을에서 고대 사원 유적을 발견하면서부터였습니다.

1954년에 시작되어 1962년까지 이어진 발굴 조사 결과, 그 자리에는 무려 세 개의 신전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 가장 오래된 신전의 연대입니다. 기원전 3000년경으로,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약 500년이나 앞서는 시기입니다.

피라미드보다 500년 앞선 바레인 바르바르 사원, 길가메시가 실제로 방문했을까?

세 개의 신전은 같은 자리 위에 연달아 축조되었습니다. 두 번째 신전은 첫 번째 신전 건립 약 500년 후에,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신전은 기원전 2100~2000년경에 세워졌습니다. 건축 재료는 모두 바르바르 서쪽에 있는 작은 섬 지다(Jidda)에서 채석한 석회암 블록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신전은 길이 25m, 폭 18m의 직사각형 단 위에 세워졌으며, 기초부에서는 제물로 안치된 수십 개의 점토 컵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컵들은 7×7 크기의 여러 그룹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함께 구리로 만든 수많은 유물도 출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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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과정에서는 도구, 무기, 도자기, 작은 금 장식품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현재 바레인 국립박물관에서 그 실물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신전 남서쪽 모퉁이에는 계단으로 내려가는 지하 성소가 있었고, 중앙 테라스는 훼손 없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테라스 중심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성소가 자리했고, 그 주위로 여러 개의 방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물을 숭배하는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샘물이 구멍 뚫린 돌 항아리를 지나 반원형 대야 옆으로 흘러들어 성소의 연못을 채웠고, 예배는 이 물을 통해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물은 깊게 판 돌 수로를 따라 신전에서 주변 들판과 정원으로 다시 공급되었습니다.

그 지하 성소야말로 압수(Apsu), 즉 원초의 담수가 흐르는 대지 심연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소는 지혜와 담수의 신 엔키(Enki), 그리고 그의 아내 닌후르사그(Ninhursag)에게 바쳐졌습니다. 인류를 창조한 신 엔키는 바로 이 압수, 대지 깊은 곳에서 원초의 물이 흐르는 장소에 거주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유명한 대홍수 서판을 비롯한 설형 문자판에 새겨진 신화는 엔키가 낙원의 땅 딜문을 어떻게 축복했는지 생생하게 전합니다. 그가 물이 흐르게 하고, 여러 지역의 배들이 금과 보석 등 각종 상품을 딜문 도시로 실어 나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대홍수 신화의 주인공이자 노아의 원형으로 꼽히는 영웅 지우수드라(Ziusudra)가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곳도 바로 이 딜문이었습니다.

피라미드보다 500년 앞선 바레인 바르바르 사원, 길가메시가 실제로 방문했을까?

후대 바빌로니아의 창세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는 창조의 장소를 티아맛(Tiamat)으로 의인화된 소금물과 압수의 담수가 만나 섞이는 곳으로 짚습니다. 흥미롭게도 '바레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랍어로 '두 개의 바다'를 뜻합니다. 영웅 길가메시 또한 해가 떠오른다는 전설의 마슈(Mashu) 산을 넘어, 딜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이 땅을 방문했다고 전해집니다.

길가메시는 아마도 훗날 신격화된 우루크 도시 국가의 실존 왕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통치 시기는 고대 왕조 시대(기원전 2900~2350년경) 초기, 즉 바르바르 신전이 세워진 시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이후 우르 제3왕조(기원전 2112~2004년경) 시대에 이르러 그는 수메르 전설 속 신화적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피라미드보다 500년 앞선 바레인 바르바르 사원, 길가메시가 실제로 방문했을까?

다만 모든 학자가 신화 속 딜문을 바레인과 동일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자 노아 크레이머는 딜문이 다름 아닌 인더스 문명이라고 믿었고, 어떤 학자들은 딜문의 범위가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동부까지 뻗어 있다고 봅니다. 1987년에는 테레사 하워드카터(Theresa Howard-Carter)가 딜문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합류하여 이루어진 200km 길이의 강, 샤트 알아랍(Shatt al-Arab) 주변, 즉 현재의 이라크에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학설 논쟁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딜문은 기원전 4천년기 말부터 기원전 800년까지 이 지역의 핵심 상업 중심지였다는 점입니다. 딜문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3000년대 후반 우루크의 여신 이난나 신전에서 발견된 설형 문자 점토판에 처음 등장합니다. 또한 라가시의 왕 우르난셰(Ur-Nanshe, 기원전 2300년경)의 비문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딜문의 배들이 외국 땅에서 목재를 조공으로 가져왔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