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푸차오 사밍프라이 요새 – 짜오프라야강 어귀를 지킨 라따나꼬신 시대의 해안 방어 거점

요새 개요

푸차오 사밍프라이 요새(ป้อมพระเจ้าสามิงพราย)는 짜오프라야강이 타이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어귀 부근, 강 동쪽 기슭의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 바다와 맞닿은 하구 지역이라 예로부터 홍수의 영향을 받아 온 곳이기도 하다.

현재의 모습

오늘날 이 요새는 태국 보건부 질병관리청 산하 라차프라차사마사이 연구소(Rajapracha Samasai Institute) 부지 안, 5층짜리 재활동 건물 뒤편에 위치해 있다. 인근 빈민굴 지역과 접해 있어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이며, 현재 푸차오 사밍프라이 시(市) 주도로 목조 건물과 요새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리적·지질학적 조건

해발 고도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약 6미터.

수계

짜오프라야강.

지질 조건

요새가 위치한 곳은 중부 평원의 하류 유역, 즉 삼각주 지역이다. 이곳은 퇴적물이 오랜 세월 쌓여 해수면 위로 드러난 땅으로, 지금도 퇴적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 짜오프라야강 유역은 수심이 얕아 물의 흐름이 느리고, 그만큼 퇴적량이 많다. 이 때문에 얕은 여울이 생기고 강줄기가 끊임없이 바뀌곤 했다. 달리 말하면 흐르는 물에 의한 침식·운반·퇴적 작용이 이 지역 지형을 만드는 핵심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토양은 모래가 약간 섞인 점토질로, 물에 잠기면 물을 잘 붙잡는 성질이 있다.

시대와 문화

  • 고고학적 시대: 역사시대
  • 시대/문화: 라따나꼬신 시대
  • 축조 시기: 라마 2세 재위기(1809~1824)
  • 유형: 진영 겸 방어 요새

요새의 구조

푸차오 사밍프라이 요새는 라마 2세(붓다렷라나팔라이) 대에 짜오프라야강 동쪽 기슭에 세워졌으며, 싱 데몬(Sing Demon) 요새와 라후 준(Rahu Jorn) 요새, 그리고 강 서안의 5개 요새와 함께 하나의 방어선을 이루었다. 벽돌과 회반죽으로 지어진 2층 규모의 요새로, 지붕에는 기와를 얹은 목조 구조를 사용했다. 포탑은 변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육각형 형태다. 요새 주변을 사각형으로 감싸듯 굴곡진 곡벽이 둘레를 두르고 있으며, 벽 모서리마다 망루가 세워졌다. 세 개의 요새에서 관련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곡벽 중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북쪽 면이다. 낮은 담장(난간벽)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

계단을 통해 요새 위쪽 마당으로 오를 수 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병사들의 숙소로 쓰인 건물이 있는데, 석조에 시멘트 지붕을 얹은 구조로 정면에는 박공 지붕 현관이 있다. 내부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고 바닥은 판자로 덮였다. 건물에는 아치형 출입구와 기둥 등 라마 5세(출랄롱꼰) 대에 유행한 서양 미술의 영향이 뚜렷하다. 이 때문에 이 건물은 각지의 요새를 개축했던 출랄롱꼰 국왕 시대에 새로 지어졌거나 크게 손질된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 배경과 역사

라마 1세(붓다요드파 출랄록)는 해안 도시들을 튼튼하게 정비하여 외적의 침공을 막고자 했다. 당시 베트남 응우옌(Nguyễn) 왕족이 라마 1세에게 의탁하여 태국에 머물렀는데, 여러 해를 보낸 뒤 돌아가면서 태국의 전략과 지리를 깊이 파악하게 되었다. 라마 1세는 그가 다시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짜오프라야강 어귀 일대를 조사하여 새 도시를 세우도록 궁무처에 명했다. 궁무처는 삼웃프라칸과 방콕 사이의 랏포(Lad Pho) 지역을 도읍지로 선정했고, 1809년 강 좌안에 위타야콤(Wittayakhom) 요새를 쌓았다. 그러나 라마 1세는 도시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승하했다.

라마 2세는 도시 축조를 이어받아 1815년에 완공하고 이곳에 '나콘쿠언칸(Mueang Nakhon Khuean Khan)'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아울러 바다에서 오는 적에 대비하기 위해 강 동안에 푸차오 사밍프라이 요새, 싱 데몬 요새, 라후 준 요새 등 3개의 요새를 추가로 쌓았다. 여기에 라마 1세 때 지은 위타야콤 요새까지 합쳐 강 동안에는 4개의 요새가, 서안에는 5개의 요새가 더 세워져 총 9개의 요새가 하구 방어선을 구성했다.

요새들은 서로 연결되어 뒤편을 두르는 성벽을 이루었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와 흙벽 건물, 정자가 함께 마련되었다. 또한 강가에는 강을 가로지를 수 있는 부표 사슬을 설치하고, 통나무로 만든 말뚝을 드문드문 박아 통행 가능한 수로마다 배치한 뒤 수백 개의 사슬로 부표를 묶어 단단히 고정하는 등 철저한 수상 방어 체계를 갖추었다.

현재의 용도

푸차오 사밍프라이 요새는 라마 6세 재위기부터 나병(한센병) 치료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까지 보건부 질병관리청 산하 라차프라차사마사이 연구소로 그 기능이 이어지고 있다.


자료 정리 및 데이터베이스 관리: 파위니 랏타나스리숙(Phawinee Rattanaseree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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