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왓 송(폐사 사찰): 아유타야 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논타부리의 숨은 유적

입지와 주변 환경

일반 현황

왓 플렝(Wat Phleng)은 현재 폐사(廢寺) 상태에 있으나, 한 차례 보수와 구조 보강 작업을 거친 사찰이다. 왓삭 운하(Khlong Wat Sak, 왓삭 대운하) 인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 운하는 클롱 옴논(Khlong Om Non)의 지류이다. 사찰 남쪽으로는 과수원과 민가가 들어서 있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왓삭 운하가 흘러 지난다. 지형은 대체로 평탄하다.

왓 플렝은 왓삭(Wat Sak)에서 북서쪽으로 약 200m, 운하길을 따라 이동하면 약 250m 거리에 있다. 클롱 옴논에서는 서쪽으로 450m, 차오프라야 강에서는 서쪽으로 3.5km 떨어져 있으며, 왓 잘로(Wat Chalor)에서는 북서쪽으로 약 1.3km 지점이다. 아유타야 시대에 창건된 왓 포 방 오(Wat Pho Bang O)에서는 북서쪽으로 각각 약 500m와 750m 거리에 위치한다.

해발 고도

평균 해수면 기준 약 8m

수로

차오프라야 강, 클롱 옴논, 왓삭 운하

지질 조건

차오프라야 강변의 충적 평야로, 홀로세(完新世) 시기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지형이다.

고고학적 개요

  • 고고학적 시대: 역사시대
  • 시대/문화: 아유타야 시대(중기~후기)
  • 전승상 연대: 아유타야 시대
  • 유적 유형: 종교 시설

창건 배경과 폐사 전승

왓 송(Wat Song, 폐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문헌으로 확인되지 않지만, 아유타야 시대에 세워졌으며 예전에는 '왓 통 플렝(Wat Thong Phleng)'이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당시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사찰로 여겨져, 아유타야 왕실에서 내려오는 카틴(kathin, 승복 공양 행사)과 마을 주민들이 올리는 카틴까지 연중 두 번의 카틴 행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격이 높은 절이었다.

사찰이 버려진 계기는 태국과 버마 간의 전쟁으로 추정된다. 수도 아유타야가 두 번째로 함락될 당시 버마군이 남쪽 방면에서 진격했는데, '나가(龍) 장군'이라 불리는 지휘관이 군대를 이끌고 논타부리를 거쳐 차오프라야 강 양안, 즉 왓 크마피랏타람(Wat Khemaphirataram) 인근에 진영을 설치하고 버마에 맞서 싸운 영국인 병력과 교전을 벌였다고 전한다. 이 전란 속에서 지역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집을 떠났고, 사찰 역시 함께 방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요 유구

우보솟(Ordination Hall)

벽돌과 회반죽으로 지어진 5칸(五間) 규모의 건물로, 동쪽(약간 북쪽으로 치우친 방향)을 향해 있다. 건물 앞뒤로는 2단 구조의 неглубок은 전랑(前廊)이 돌출되어 있으며, 정면과 후면에 각각 1개씩의 문이, 좌우 측면에는 5개씩의 창문이 나 있다. 문과 창은 모두 목재로 제작되어 적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앞뒤 박공지붕과 문설주에는 다양한 식물 문양을 새긴 석고장식(stucco)이 정교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장식 미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내부에는 마라퇴치(降魔成道) 형상의 본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룡포 토(Luang Por To)' 또는 '룡포 우통(Luang Por U Thong)'이라 불린다. 금박을 입힌 적색 사암 불상으로, 무릎 너비가 우보솟 내부 폭의 4분의 3에 달할 만큼 웅장한 규모다. 불상은 '축치'라 불리는 전통 벽돌 기단 위에 안치되어 있는데, 이 기단은 상당히 훼손된 상태로 남아 있다. 보수자가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려 의도적으로 손대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안전을 위한 구조 보강만 이루어졌다.

벽면에는 적색 바탕에 그린 벽화 흔적이 있으나 상당히 흐려 판독이 어렵다. 본존불 뒤편 벽화는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일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정문과 후문 위 처마 서까래·보(樑) 부분의 그림, 그리고 후문 위 박공에 그려진 천녀(天女) 이미지는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우보솟 주위에는 벽돌로 만든 8기의 경계석(바이세마) 기단이 배치되어 있다. 대부분 복원되지 않았고 세마석도 안치되어 있지 않은데, 이는 대부분의 세마석이 인근 왓삭야이(Wat Sak Yai)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다만 동쪽 정면 중앙과 북쪽 일부는 완벽하게 복원되어 있어, 해당 기단이 사자(獅子) 모양 기단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세마석은 적색 사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정면의 세마석은 파손되었지만 연꽃 조각과 구슬무늬 장식을 여전히 볼 수 있다.

종루(Bell Tower)

우보솟 남쪽, 즉 오른쪽에 위치한 종루는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진 2층 건물로, 최상층과 계단이 모두 붕괴된 상태다. 1층 아치는 연꽃잎 무늬가 장식된 첨두형(尖頭形) 아치로, 서양 건축 양식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요소다.

연대 추정과 관리 현황

본존불상의 미술 양식과 건물의 건축 양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 사찰은 아유타야 중기에 창건되어 아유타야 후기에 다시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왓 플렝의 토지 소유권은 국가 불교청(National Buddhism Office)에 귀속되어 있다. 사이 리암눗(Sai Liamnut) 여사의 딸인 라다 피싯와니치(파농) 씨가 1942년부터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과수원 경작을 위해 이 토지를 임차하고 있으며, 조상에게 물려받은 역할로서 왓 플렝(폐사)의 관리인도 함께 맡고 있다. 현지 조사 당시에는 사찰 부지에 상주 관리인 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