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북미 대륙에 두 번째 바이킹 유적이 존재할까?

북미 대륙, 두 번째 바이킹 유적의 발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기 무려 500년 전, 유럽인들이 이미 아메리카 대륙을 밟았다는 새로운 증거, 즉 또 하나의 바이킹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북미 대륙에 두 번째 바이킹 유적이 존재할까?

바이킹 배가 새겨진 높이 1.70m의 스웨덴 티앙그비데(Tjängvide) 기념비석. 1844년 고틀란드 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푸앵트 로제에서 드러난 철 제련의 흔적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 남서부에서 고고학자들이 새로운 바이킹 거점을 찾아낸 것일까요? 이 스칸디나비아 정착지가 확인된다면 대륙에서는 두 번째 사례가 되며, 콜럼버스가 1492년에 도착하기 최소 500년 전에 이미 유럽인이 신대륙의 땅을 밟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하게 됩니다.

성로렌스 강의 물줄기와 북대서양이 만나는 뉴펀들랜드 끝자락, 푸앵트 로제(Pointe Rosée) 유적의 발굴 과정에서 숯의 흔적과 함께 무려 9킬로그램에 달하는 슬래그(제철 부산물)가 출토되었습니다. 바이킹들은 이탄을 연료로 사용해 철을 생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구진이 확보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는 이곳의 방문 시기를 서기 800년경부터 1300년경 사이로 추정합니다. 이는 스칸디나비아의 사가(saga)*가 전하듯 바이킹 항해자들이 북대서양을 누비던 시기와 정확히 겹칩니다. 최초의 바이킹 지도자 라이프 에릭슨(Leif Eriksson)의 방문 이후 적어도 3세기에 걸쳐 캐나다 동해안으로 산발적인 항해가 이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대륙에 두 번째 바이킹 유적이 존재할까?

새로운 바이킹 유적으로 주목받은 뉴펀들랜드 푸앵트 로제의 풍경. © Greg Mumford

위성 영상으로 포착된 유적

이 유적은 2015년 6월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위성 판독 기술을 활용해 고대 유적을 탐지해 온 미국 앨라배마대학교 연구원이자 테드상(TED Prize) 수상자인 사라 파르캭(Sarah Parcak)이 특수 위성 영상 분석 과정에서 바이킹 건축물로 보이는 흙벽의 잔존 흔적을 확인한 것입니다.

첫 번째 유적, 랑스 오 메도우즈

그동안 아메리카에서 알려진 유일한 바이킹 유적은 역시 뉴펀들랜드에 위치한 랑스 오 메도우즈(L'Anse aux Meadows)입니다. 현재 푸앵트 로제에서 북쪽으로 500km 떨어진 이곳은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고인이 된 노르웨이 탐험가 헬게 잉스타드(Helge Ingstad)가 여러 해에 걸쳐 연구한 이 유적에서는 1960년,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바이킹 건축물과 모든 면에서 동일한 소규모 건물군이 발굴되었습니다. 여섯 채의 주거지 기초와 대장간 흔적, 그리고 현장에서 철이 제련되었음을 입증하는 다량의 슬래그가 함께 확인되었죠. 이곳에서는 철 못, 등잔, 활석 그릇 등 130점이 넘는 유물이 수집되었으며, 정착 기간은 최소 30년으로 추정됩니다.

북미 대륙에 두 번째 바이킹 유적이 존재할까?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랑스 오 메도우즈 바이킹 유적. © UNESCO

극지방까지 뻗친 바이킹의 발자취

전문가들은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이 자신들이 세운 서부 식민지보다 더 북쪽까지 진출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북위 79도를 넘는 어빙 섬에서는 카른(cairn, 돌무지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캐나다 고고학자 피터 슐레더만(Peter Schledermann)이 데이비스 해협 근처 엘즈미어 섬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캐나다 북극 지역에서도 추가 흔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통, 나무, 철, 구리, 선체 리벳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난파선의 잔해일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심지어 노르웨이 국왕 올라프 키레(Olaf Kyrre)의 초상이 새겨진 11세기 바이킹 은화가 미국 메인주 해안에서도 출토된 바 있습니다.

수많은 접촉의 증거

그렇다면 왜 바이킹 정착지는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까요? 비교적 급격하게 사라진 바이킹의 미스터리는 오늘날 고고학자들이 풀어야 할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그린란드에서는 10세기 '붉은 에릭(Erik the Red)'의 정착지가, 아메리카에서는 원주민들과의 접촉 흔적이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은 도르셋(Dorset) 문화와 툴레(Thule) 문화—사가에서 '작은 사람들'이라 불리는 스크렐링(Skraelings)—과 물물교환을 했습니다. 이러한 접촉은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아메리카의 원주민과의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기후 변화, 가장 유력한 몰락의 원인

그러나 바이킹들이 정착지를 버린 이유에 대한 여러 가설 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후 조건의 급격한 악화, 특히 그린란드와 관련된 가설입니다. 북대서양 생물문화기구(NABO)가 1998년 빙하에서 채취한 코어 분석 결과, 1343년부터 1362년 사이 평균 기온이 끔찍할 정도로 하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후 정착민들에게 삶은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한랭화와 함께 빙하가 육지를 침식하며 막대한 모래와 자갈을 쏟아내고 목초지 면적을 급감시켰습니다. 수확도 가축의 먹이도 없이 이어진 여러 해가 결국 이들을 몰락시켰을 것입니다. 그린란드 서부 식민지의 버려짐은 하나의 비극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뉴욕 헌터칼리지(Hunter College)의 토머스 맥거번(Thomas McGovern)은 니파츠속(Nipaatsoq) 농장 발굴을 바탕으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절망에 빠진 마지막 주민들은 가축을 발굽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개까지 잡아먹었다. 그만큼 굶주림이 극심했다는 증거다."

신화 속 이야기, 사가

사가(Saga)는 중세 스칸디나비아 문학에 담긴 신화적 이야기를 일컫습니다. 아메리카와 빈란드(Vinland)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기록은 1075년 브레멘의 아담(Adam of Bremen)이 저술한 『함부르크 교회 주교록(Gesta Hammaburgensis Ecclesiae Pontificum)』과 아리 토르길손(Ari Thorgilsson)의 『아이슬란딩가복(Islandingabok)』에 언급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