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로마 최악의 군사적 재앙 현장, 토이토부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은화 보물

라인강 동쪽 게르마니아, 로마 역사상 가장 처참한 패배가 벌어진 현장에서 100점이 넘는 고대 화폐가 한꺼번에 출토되었습니다. 이 전투는 로마 제국의 라인강 너머 팽창 정책에 종지부를 찍은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로마 최악의 군사적 재앙 현장, 토이토부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은화 보물

독일 토이토부르크 전투 유적지에서 발견된 서기 1세기 로마 은화 데나리우스.

서기 9년, 오늘날 독일 베스트팔렌 지방 칼크리제(Kalkriese) 언덕 일대에서 로마군 3개 군단과 보조부대 약 2만 5천 명이 게르만 부족 연합군에게 완전히 섬멸당했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유물을 품고 있는 이 토이토부르크 대지에서,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LMU)의 독일 고고학자들이 장관급 화폐 보물을 발굴해냈습니다.

로마 최악의 군사적 재앙 현장, 토이토부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은화 보물

2017년 3월 말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출토된 로마 은화 중 하나. © Varusschlacht gGmbh Museum and Park Kalkriese

“총 102점의 은화 데나리우스입니다. 지난해 발굴된 금화 아우레우스를 제외하더라도, 현재까지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 화폐는 모두 220점에 이릅니다.” 칼크리제 박물관의 발굴 책임자 마르크 라페(Marc Rappe) 고고학자가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 귀중한 화폐 더미는 어떻게 땅속에 묻히게 된 것일까요? “전투에 휘말린 어느 로마 군인이 전투가 끝난 후 다시 찾기를 바라며 급하게 자신의 재산을 숨겼을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그는 추측했습니다.

로마 최악의 군사적 재앙 현장, 토이토부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은화 보물

토이토부르크에서 출토된 금화 아우레우스. © Varusschlacht gGmbh Museum and Park Kalkriese

아르미니우스의 배신, 완벽한 덫

이 전투는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가 이끄는 로마 군단과, 케루스키족 등 강력한 게르만 부족 연합을 이끈 아르미니우스(Arminius)의 군대가 맞붙은 격전이었습니다. 전장의 위치를 두고는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습니다. 19세기 이래 토이토부르크는 프랑스의 알레시아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온 국가적 신화였고, 여러 지역이 ‘고대 격전지’라는 영예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논쟁은 1980년대 말 오스나브뤼크 북쪽 칼크리제로 유적지가 확정되면서 비로소 마무리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미 5천500점이 넘는 로마 유물과 군용 장비 조각이 수집되었습니다. 검, 단검, 투창 촉, 화살, 갑옷 파편, 투구—그중에는 시립 박물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놀랍도록 정교한 청동 얼굴 가면도 있습니다. 행군 중 군대가 지녔던 물품들, 즉 솥, 도끼, 못, 망치, 암포라(양수 항아리) 등도 빠짐없이 발견되었습니다.

로마 최악의 군사적 재앙 현장, 토이토부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은화 보물

2017년 4월 토이토부르크 유적지에서 발굴을 지휘하는 칼크리제 박물관·공원의 마르크 라페와 함께한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LMU) 고고학자들. © Varusschlacht gGmbh Museum and Park Kalkriese

역사학자 얀 르 보헥(Yann Le Bohec)의 저서 『로마 전쟁사』(Taillandier, 2017)는 로마 군단 XVII, XVIII, XIX가 군단기를 잃고 몰락—그리고 불명예—에 빠졌던 그 처참한 사흘을 생생하게 되살려 줍니다. 이 번호들은 영원히 로마의 군단 기호에서 삭제되었습니다. 배신이라는 배경 위에서 펼쳐진 이 비극의 중심에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게르마니아 군을 지휘하던 집정관 레가투스이자 로마 총독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그리고 케루스키족 지도자 아르미니우스입니다. 아르미니우스는 로마 시민권과 기사 계급을 받았으면서도 몰래 게르만 반군에 가담해 있었습니다. 이 땅을 잘 알았던 그는 제국군에 동행하며, 라인강변의 월동 진영으로 이동하려면 토이토부르크 숲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택하라고 바루스에게 ‘친절하게’ 조언했습니다. 얀 르 보헥의 표현대로, 그 조언은 실은 “완벽한 쥐덫”이었습니다.

로마 최악의 군사적 재앙 현장, 토이토부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은화 보물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 로마 기병 얼굴 가면. © Varusschlacht gGmbh Museum and Park Kalkriese

정찰을 나갔던 아르미니우스는 곧바로 게르만 진영으로 돌아갔고, 게르만족은 공격을 개시합니다. 전투 소식을 들은 바루스는 선봉을 구원하러 군대를 숲속 깊이 이끌고 들어섰습니다. 함정이 닫힙니다. 대형을 유지하며 싸우는 데 익숙한 코호트 단위의 군단은 좁은 숲에서 대열을 펼 수 없었습니다. 나무 사이에서는 흉갑과 방패가 오히려 군인들의 발목을 잡았고, 전쟁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아르미니우스가 직접 지휘한 게르만 전사들은 끊임없이 매복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늪과 언덕 사이에 갇힌 로마 병사들 위로 게르만 전사들이 물결처럼 쏟아져 내렸고, 로마군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로마 역사가 카시우스 디오(155~235)의 기록에 따르면, 앞쪽의 학살을 알지 못한 후위 부대는 계속해서 늑대의 입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참사는 극에 달했고, 바루스는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 자결을 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클라데스 바리아나(clades Variana)’, 즉 “바루스의 재앙”이라는 말과 함께 기억되게 됩니다.

로마 최악의 군사적 재앙 현장, 토이토부르크에서 발견된 고대 은화 보물

19세기 삽화에 그려진 바루스의 자결 장면. © Leemage/AFP

“Vae victis… 패자에게 재앙이 있으리라!”

하나의 트라우마로 받아들여진 토이토부르크의 참패는 로마 제국 팽창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밤에 벌떡 깨어나 “바루스, 내 군단들을 돌려다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뒤 새 황제 티베리우스는 새 원정군을 게르마니아로 파견했습니다. 서기 15년, 전장으로 돌아온 로마 군인들은—죽은 자가 무덤 속에서 또 다른 삶을 살 것이라 믿었던—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합니다. 승자 게르만족이 로마군을 더욱 굴욕시키기 위해 2만 5천 명의 시체를 매장하지 않은 채 썩게 내버려 두었던 것입니다. “Vae victis… 패자에게 재앙이 있으리라!” 티베리우스가 파견한 명장 게르마니쿠스는 8개 군단을 이끌고 도착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훼손된 시신이 많았던 유해를 마침내 매장했습니다. 한편 로마에 최악의 패배를 안긴 아르미니우스는 서기 21년, 하필 친첝의 배신으로 암살당하고 만습니다.

*아우레우스(Aureus): 복수형은 aurei, ‘금 데나리우스’라고도 불리는 로마 화폐입니다. 로마 공화정 시대에 처음 발행되기 시작해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리고 아우구스투스(기원전 1세기 말) 치세에 정기 주조되었으며, 이후 로마 제국 전역에서 주조되었습니다. 금화 아우레우스 1점은 은화 데나리우스 25점, 즉 세스테르티우스 100점에 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