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도금 가면과 극히 드문 미라 제작(방부 처리) 작업장이 이집트 사카라 네크로폴리스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칼사이트와 흑요석을 박아 눈을 표현한 희귀한 은도금 가면이 지하 매장실 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미라 35구, 석관 5기, 1939년 이후 처음 확인된 금도금 은 가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완전한 형태를 갖춘 미라 제작 작업장까지… 2018년 7월 14일 프랑스 국경일 축제와 월드컵 우승 결승전이 열리던 주말에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집트는 자국의 땅속이 여전히 전례 없는 보물들을 쏟아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세계에 알렸습니다.
운아스 피라미드 인근, 지하 30미터에서 밝혀진 비밀
발굴 현장은 카이로 남쪽, 기자(Giza) 고원에 펼쳐진 방대한 사카라(Saqqara) 네크로폴리스, 운아스(Unas) 피라미드 인근이었습니다. 이집트 고대유적부 장관 칼렘 엘아나니(Khaled El-Anany)는 국제 기자회견을 통해 제26왕조, 이른바 사이테(Saite) 시대(기원전 664~525년)에 조성된 매장실들과 미라 제작 작업장의 발견 사실을 상세히 공개했습니다. 이 시기는 페르시아의 정복(기원전 525년) 직전, 파라오 이집트가 잠시 부흥했던 짧지만 빛나는 한 세기였습니다.
라마단 바드리 후세인(Ramadan Badry Hussein)이 이끄는 이집트·독일 합동 연구팀은 2,500여 년 전 사람들이 깊이 30미터까지 파 내려간 우물형 갱도의 저 깊은 곳에서 이 유적들을 찾아냈습니다.
3D 측량으로 재현된 지하 복합 시설

사카라에서 발견된 사이테 시대의 지하 갱도와 매장실을 담은 3D 포토그래메트리 모델. 출처: 튀빙겐 대학교
암반을 깎아 만든 통로를 따라 여러 미라와 목관, 석관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그중 4기는 아직 봉인된 채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는 파이앙스(faience) 소재의 우샤브티(ushebti)(또는 샤우압티 chaouabti) 인형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무덤에 대량으로 넣어두던 '소형 장의 종자' 인형입니다. 바로 그 지하, 두 번째 갱도인 길이 13미터의 수직 샤프트 안에서 희귀한 미라 제작 작업장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고인의 영원한 여정을 위해 시신을 준비하던 바로 그곳입니다.
석관 속 미라와 파이앙스 인형들

미라가 안치된 채 발견된 석관. 출처: 이집트 고대유적부

다량 출토된 파이앙스 소재 우샤브티 인형. 출처: 이집트 고대유적부
또한 유해의 내장을 담기 위한 알라바스터 재질의 관개 단지(canopic jar)가 발견되었고, 미라 제작 과정에서 사용된 연고와 물질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일련의 용기들도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아마포 붕대를 감는 최종 단계에 앞선 공정의 흔적입니다. "이 잔류 유분들의 발견은 진정한 황금광산입니다! 이를 통해 화학 조성을 정밀하게 규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라고 튀빙겐 대학교(독일)의 이집트학자 라마단 바드리 후세인은 기뻐했습니다.
흙벽으로 된 두 개의 대형 수조는 시신을 담가 탈수시키던 천연 소금 나트론(natron)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접한 매장실에서는 심하게 훼손된 목조 관 안에 누워 있는 미라의 얼굴 위로, 칼사이트와 흑요석을 박아 눈을 표현한 은도금 가면이 아직도 쓰인 채 발견되었습니다.
'무트 신의 제2사제'가 썼을 가능성

복원 작업 전의 은도금 가면. 출처: 라마단 바드리 후세인 / 튀빙겐 대학교
초기 연구에 따르면 이 가면은 독수리 머리 장식을 한 여신 '무트(Mut)'의 제2사제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라 제작은 종교 의식과 결부된 일이었기에 방부 처리사들은 실제로 사제였으며,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삶의 또 다른 단계로 여겼습니다. 가면 소유주의 이름에는 여신 네이트(Neith)의 이름도 들어 있는데, 네이트 숭배는 제26왕조 사이테 시대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2천 년 이상 지하에 묻혀 크게 검게 변색된 이 가면은 집중적인 복원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튀빙겐 대학교(독일)에서 마티아스 랑(Matthias Lang)이 이끄는 eScience Center가 실시한 레이저 측량을 바탕으로 제작된 3D 영상 덕분에, 2016년부터 '사카라 사이테 무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구 중인 이 지하 복합 시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학자 가스통 마스페로(Gaston Maspero, 1846~1916)조차 19세기 말 이 입구를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구획입니다. 장관은 "이는 발견의 시작에 불과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발굴된 모든 유물은 현재 마무리 공사 중인 그랜드 이집션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GEM)에 전시될 예정입니다.

고인의 내장을 담았던 관개 단지. 출처: 이집트 고대유적부
미라 제작술: 3000년의 축적된 경험
약 3천 년에 걸쳐 이어져 온 미라 제작 기술은 시대마다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 핵심 원리는 시신의 부패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씻긴 시신은 뇌를 제거하는 수술(두개골 처리, excerebration)과 위·간·폐·장을 꺼내는 내장 적출(evisceration) 과정을 거쳤습니다. 방부 처리된 내장은 네 개의 관개 단지에 차례로 보관되었으며, 오직 생명의 좌표로 여겨진 심장만은 몸속 원래 자리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매장 갱도 바닥에서 발견된 미라들. 출처: 이집트 고대유적부
나트론(탄산나트륨)에 담근 살갗은 40일간의 침지 과정을 거치며 건조되었습니다. 이후 향료 물질과 향기로운 연고를 머금은 겹겹의 아마포 붕대로 시신을 감쌌습니다. 붕대 사이에는 보호 부적들을 끼워 넣고, 얼굴에는 장례용 가면을 씌웠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총 70일이 걸렸습니다. 고등실용학교(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의 이집트학자 파스칼 베르누스(Pascal Vernus)는 "생선 염장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 때문에 그리스어 '타리케우테(taricheute)'라는 한 단어가 방부 처리 전문가와 염장 전문가를 동시에 가리켰다!"고 회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