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빙엄턴대학교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새로운 연구를 통해,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스터섬 석상들 위에 얹힌 수 톤 무게의 원통형 머리 장식이 어떻게 설치되었는지 그 과정이 밝혀졌다.

이스터섬의 모아이(moai) 석상들은 수 톤에 달하는 무게의 관 모양 머리 장식, 이른바 푸카오(pukao)를 얹고 있다.
3747km 바다 너머의 화산섬, 라파누이
웅장한 석상들로 유명한 이스터섬(라파누이, Rapa Nui)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칠레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해안까지 3747km 떨어진 이 화산섬의 돌 거인 '모아이'를 연구해 온 인류학자 칼 P. 리포(Carl P. Lipo)가 이끄는 팀은 이 석상들의 여러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왔다. 그중 최신 성과는 바로 파스쿠아인(이스터섬 주민)들이 푸카오—각각 최대 13톤에 달하는 화산암 덩어리—를 어떻게 높이 10m에 이르는 석상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는지 규명한 것이다.
약 50개의 머리 장식 분석
최근 저널 오브 아케올로지컬 사이언스(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발표된 논문에서 리포는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의 숀 W. 힉슨(Sean W. Hixon)과 함께 약 50개의 특이한 머리 장식이 채석장인 푸나 파우(Puna Pau)에서 채굴되어 때로는 13km 떨어진 건립 현장까지 운반·설치된 과정을 상세히 분석했다.

밧줄과 경사로를 이용한 '패럿버클' 기술
연구팀에 따르면 소수의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했다. 흙과 자갈로 만든 경사로를 따라 식물 섬유로 엮은 밧줄을 사용해 원통형 장식물을 끌어올린 방식이다. 영어로 '패럿버클(parbuckle)'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밧줄을 끌어올릴 물체에 감아 당기는 방식으로, 예로부터 해군에서 무거운 통을 경사면 위로 굴려 올릴 때 쓰던 조작법이다(*트레비르). 이렇게 운반된 푸카오는 라노 라라쿠(Rano Raraku) 화산구의 화산 응회암에 조각된 모아이 석상 위에 안치되었다(삽화 참조).

정교하게 다듬어진 결합 구조
흥미롭게도 모든 푸카오에는 석상 머리의 둥근 윗부분에 맞춘 살짝 파인 홈, 즉 '요철(indentation)'이 미리 깎여 있었다. 푸카오가 설치된 후 경사로는 철거되었고, 일부는 석상을 받치는 대지(아후, ahu)를 보강하는 재료로 재활용되기까지 했다. 아울러 이전에 약 50개의 푸카오에 대해 실시된 3D 포토그래메트리(사진측량) 조사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각인 장식(암각화)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모아이 걷기" 실험과 협력 가설
칼 P. 리포는 오랫동안 이스터섬 거석상들과 이 숭배받는 조상상들이 섬 곳곳으로 어떻게 이동되었는지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2011년 하와이 제도에서 진행된 일련의 실험에서 그는 섬 주민들이 단순한 꼬아 만든 밧줄만으로 석상들을 "걸려 이동"시켰을 가능성—그의 표현을 빌리면 "냉장고를 옮길 때처럼"—을 시연하기도 했다(논란은 있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연구는 섬에 거주하던 여러 부족에게 일반적으로 귀속되어 온 갈등적이고 호전적인 행태 가설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이앵스 에 아브니르(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리포는 "모아이의 건축과 머리 장식의 설치는 모두, 섬의 선사 시대 공동체가 위대한 조상 추장들을 기리기 위해 어떻게 함께 일하고 협력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파스쿠아인들은 석상 운반에 필수적이라 여겨졌던 통나무를 만들기 위해 라파누이를 뒤덮은 야자수 숲을 베어낸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른바 '에코사이드(생태학적 자멸)' 가설은 지금까지 섬 쇠퇴의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어 왔지만 말이다.
*트레비르(trevir): 해군에서 무거운 통을 경사면 위로 굴려 올리는 데 오랫동안 사용된 취급 기술.

이스터섬 이야기
면적 163.6km²에 불과한 외딴 섬 이스터섬은 폴리네시아인들에 의해 서기 6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정착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722년 4월 부활절 일요일에 네덜란드 항해자 야콥 로흐헤번(Jacob Roggeveen)과 코르넬리스 부먼(Cornelis Bouman)이 발견한 이후에야 비로소 세계에 알려졌다. 1770년 스페인 탐험대가 모아이 석상 꼭대기에 푸카오가 얹혀 있다고 처음 기록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왕관'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