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코르테스의 잃어버린 함대를 찾아서

500년 전,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멕시코 땅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지금 멕시코만에서는 스페인 정복자(conquistador) 원정대가 탔던 배들을 찾기 위한 해양 고고학 탐사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코르테스의 잃어버린 함대를 찾아서

멕시코 플라야 비야리카(Playa Villa Rica) 인근 해역에서 자력계(마그네토미터)가 감지한 이상 신호들. 이곳은 1519년 코르테스 함대가 침몰된 장소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난파선을 쫓는 사람들. 어떤 이들은 멕시코만의 청록빛 바닷속으로 다이빙해 해저 풍경을 감상하지만, 로베르토 훈코 산체스(Roberto Junco Sánchez)는 바다에서 난파선을 추적하는 일을 택했습니다. 그것도 보통 배가 아닙니다. 멕시코 국립고고학역사연구소(INAH)의 연구자이자 수중고고학 부서의 새 책임자인 그는 전설적인 배들의 흔적을 쫓고 있습니다. 바로 1519년,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악토판(Actopan) 해안에서 직접 침몰시킨 10척의 배 — 아메리카로 향했던 함대를 이룬 11척의 카라벨선(아래 상자 기사 참조)과 여러 브리간틴선 가운데 해당되는 배들입니다. 이는 쿠바에서 데려온 부하들이 귀향을 꿈꾸지 못하도록 미련을 뿌리뽑은 결단이었으며, 16세기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Bernal Díaz del Castillo)의 연대기에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야심차고 냉혹했던 코르테스는 불만을 품은 동료와 병사들 사이에서 두 차례나 심각한 반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코르테스의 잃어버린 함대를 찾아서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상륙한 지 500년, 국제 다이버 팀이 스페인 정복자 함대의 잔해를 찾고 있습니다. © Jonathan Kingston

금속 이상 신호 포착

훈코 산체스는 미국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호렐(Christopher Horrel, 텍사스 대학교 메도우즈 센터)과 프레더릭 안셀만(Frederick Anselmann, 마이애미 대학교), 그리고 캐나다·스페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제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2월 5일자 멕시코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El Comercio)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9년 여름 새로운 탐사에 나설 예정입니다. 프랑스 과학지 사앙스 에 아브니르(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베라크루스에서 북쪽으로 75km 떨어진 플라야 비야리카 앞바다에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역사서는 함대 침몰 사건이 벌어진 곳을 바로 이곳으로 지목하며, 단 한 척만이 그 운명을 피했다고 전합니다.

"작년에 특정한 10㎢ 구역 안에서 확인된 자기 이상 신호에 대한 조사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우리는 코르테스가 이곳에 닻을 내렸다고 믿습니다."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 팀은 지구 자기장의 변화를 측정해 금속성 이상 물체의 존재를 탐지할 수 있는 측면주사 소나(side-scan sonar)와 자력계를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60여 곳의 불규칙 지점 — 철제 물질일 가능성이 있는 곳 — 이 확인됐습니다. "꽤 자신 있고, 곧 발표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전문가는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미 스페인 정복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닻 한 점과 목재 조각들이 회수된 상태입니다.

코르테스의 잃어버린 함대를 찾아서

1520년 7월 오툄바 전투에서 아즈텍과 싸우는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 작자 미상, 스페인 톨레도 육군 박물관 소장. © Leemage/AFP

잃어버린 함대의 위치 확인이라면 중대한 사건

"이 배들에 대해서는 선박 구조 측면에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100톤 남짓의 소형 선박이었다는 사실 정도입니다."라고 훈코 산체스는 말합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1492)에서 불과 27년 뒤인 1519년 4월 23일 멕시코에 도착한 이 배들은 보병 550명과 소수의 선원·기병, 쿠바 출신 원주민 200명, 암말과 말 16마리, 그리고 화기·석궁·검·창으로 이루어진 무기를 가득 싣고 있었습니다.

코르테스의 잃어버린 함대를 찾아서

아즈텍 황제 모테수마 2세(Moctezuma II, 1466~1520) 초상. 작자 미상 회화, 이탈리아 피렌체 무세오 델리 아르젠티 소장. © Leemage/AFP

당시 기록에 따르면, 코르테스는 바로 이 병력으로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여 주권자 모테수마 2세를 생포하고 수도 테노치티틀란(오늘날의 멕시코시티)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합니다. 특히 아즈텍과 적대하던 여러 부족들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인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한편 이 폭력적인 정복에서 그는 스페인인들이 몸에 지닌 채 건너온 병원균과 인수공통감염병으로부터도 의도치 않은 지원을 받았는데, 이 질병들은 수십 년 만에 한 대륙 전체를 몰아붙이며 원주민 인구를 급감시켰습니다.

코르테스의 잃어버린 함대를 찾아서

탐사 지역은 베라크루스 지방의 플라야 비야리카 앞바다에 자리해 있습니다. © Jonathan Kingston

코르테스의 함대만이 멕시코 해역에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1520년, 상륙 후 불과 1년 뒤, 코르테스의 허가 없는 정복에 분노한 쿠바 총독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파견한 18척 중 16척도 지휘관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Pánfilo de Narváez)에 의해 침몰됩니다. 그렇다면 플라야 비야리카 앞바다에는 무려 26척 가까운 배가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셈입니다!

살려 둔 열한 번째 배…
자침시킨 함대 가운데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가 유일하게 살려 둔 배는 열한 번째 배였습니다. 정복 사업의 후원자인 스페인 군주에게 왕의 5분의 1 세금(킨토, quint), 즉 금의 5분의 1을 전해 왕실의 총애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아즈텍 황제 모테수마 2세가 생포되기 직전 바친, "감탄할 만한 공예 기술"의 귀중품들로 이루어진 보물을 실은 배였습니다. 모테수마는 금을 바쳐 코르테스가 떠나게 되면 백성을 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 허사였습니다. 이 보물의 완전한 목록은 1519년 7월 10일 코르테스가 카스티야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로스 5세에게 보낸 첫 번째 카르타 데 라시온(Carta de Relación)의 부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