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미니어처 병마용이 세상에 나오다
약 2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백 점의 점토 인형—병사, 전차, 말—이 중국 동부에서 발굴되었습니다. 2007년에 이루어진 이 발견은 오랜 침묵 끝에 학술지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기병, 전차, 보병, 악사까지… 하나의 완전한 축소 테라코타 군대가 중국 산둥성 린쯔(臨淄) 지역의 거대한 유구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린쯔는 고대 제나라(齊)의 수도였던 곳으로, 기원전 11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군대 유물들은 한나라 시대 고위 귀족의 사후 세계를 함께할 목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중국 문화재 학술지 Chinese Cultural Relics에 게재된 이 소식은 온라인 매체 Live Science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2007년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본격적인 고고학 발굴 작업이 완료된 2016년에야 공표될 수 있었습니다. 점토 인형들은 한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년)의 아들인 유흉(劉弘)이 사망했을 때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승길을 함께한 점토 병사들
중국 고고학자들이 공개한 몇 장의 흑백 사진을 통해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 군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왕자들은 저승으로 가는 여정에서 점토로 빚은 병사와 하인들뿐만 아니라 동물, 그리고 사후 세계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의 호위를 받곤 했습니다.

린쯔 부장용 유구에서 발견된 미니어처 기병 중 하나. 출처: Chinese Cultural Relics.
진시황릉 병마용과의 비교
이러한 형태의 부장은 황제, 왕자 또는 최고위 관리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시안(西安)에서 전 세계 방문객들이 찾아보는 '진시황제'(기원전 259~210년)의 능묘입니다. 진시황릉 병마용은 7,500기를 넘는 등신대 병사들로 구성된 반면, 린쯔의 미니 군대는 높이 21cm에서 32cm의 축소형 인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일부 망루 형태의 유물은 140cm에 달합니다.
테라코타 인형들은 특정한 배치 원칙에 따라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기병과 전차는 남쪽에 배치되었고, 300명의 보병은 중앙에 방진(方陣) 형태로 배열되었으며, 악사들은 북쪽의 작은 누각에 자리했다." 음악이 유교 제례 의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점토로 빚어낸 보병 인형들. 출처: Chinese Cultural Relics.
철도 위로 사라진 무덤
중국 학술지에 따르면, 점토 부대가 안치된 유구와 연결된 실제 무덤의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현지의 노인들은 과거 높이 4m에 달하는 봉분이 존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문제는 철도였습니다. 1969년 철도 노선 건설로 인공 언덕이 평지로 깎여 나가면서 무덤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린쯔 고성 유적 주변에는 백여 개의 봉분이 둘러싸고 있어, 고대부터 이어진 도굴과 약탈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발견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해 보입니다.
부장용 테라코타, '명기(明器)'란?
한나라 시대에는 효 사상의 발달로 부유한 가문들이 선조를 엄청난 양의 점토 부장품과 함께 묻는 관습이 크게 성행했습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물건과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이 특징인데, 이러한 귀족의 풍습은 점차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당나라(618~907년) 때에 이르러서는 무덤에 붙장되는 명기의 수량을 제한하기 위해 감독 관청을 따로 두어야 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