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혈흔 속 DNA가 밝혀낸 진실, 프랑스 혁명가 마라트를 괴롭힌 질병의 정체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 장 폴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명화 마라의 죽음은 그를 영원히 각인시켰으며, 이 걸작은 오늘날 초등학생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프랑스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793년 7월, 샤를로트 코르데(Charlotte Corday)의 칼에 욕조 안에서 암살당한 마라. 그가 목욕에 많은 시간을 보낸 이유는 바로 괴로운 피부병으로 인한 고통을 달래기 위해서였습니다. 과연 어떤 질병이 국민공회 의원이었던 그를 하루에도 몇 시간씩 욕조에 머물게 만들었을까요? 국제 공동 연구팀이 바로 이 물음에 답했고, 그 결과는 학술지 BioRxiv에 게재되었습니다.

혈흔 속 DNA가 밝혀낸 진실, 프랑스 혁명가 마라트를 괴롭힌 질병의 정체

암살 당시 마라의 피로 물든 신문 '인민의 벗' 페이지에서 분석용 샘플을 채취하는 장면

혈흔 묻은 '인민의 벗' 한 페이지

이 연구는 고대 DNA 분석의 세계적 전문가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진화생물학연구소(Institute of Evolutionary Biology)의 유전학자 카를레스 랄루에사폭스(Carles Lalueza-Fox)가 주도했습니다. 그는 몇 년 전 루이 16세의 혈액을 분석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지난 8,000년간 이베리아반도에서 일어난 인구 이동 연구로도 주목받았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베르사유생캉탱대학교(UVSQ) DANTE 연구소(EA 4498) 소속의 고병리학자 필립 샬리에(Philippe Charlier) 박사도 참여했습니다.

연구진은 마라가 직접 편집하던 신문 인민의 벗(Ami du Peuple)의 한 페이지에 주목했습니다. 마라는 암살당시 바로 이 페이지에 주석을 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여동생 샤를로트 알베르틴(Charlotte-Albertine)이 보관했던 이 혈흔 문서들은 여러 수집가의 손을 거친 끝에 파리 국립도서관(BNF) 판화 부서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염기서열 분석을 위한 샘플 채취가 허가되었습니다.

혈흔 속 DNA가 밝혀낸 진실, 프랑스 혁명가 마라트를 괴롭힌 질병의 정체

『마라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가 암살 직후 마라트를 그린 초상화(1793). 벨기에 왕립미술관(브뤼셀) 소장. © Josse/Leemage/AFP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의사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던 마라는 생전에 자신의 병이 온몸으로 번져 심한 가려움증과 통증을 동반하는 궤양을 유발했으며, 오직 물로만 통증이 완화됐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 병을 정치적 적들을 피해 때때로 몸을 숨기던 파리의 하수도에서 감염된 것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5억 개 DNA 서열이 드러낸 결정적 단서

분석 결과, 채취한 혈액 샘플에서 무려 5억 개가 넘는 DNA 서열이 회복되었으며, 이 중 7,400만 개는 마라 본인의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아버지가 사르데냐계였고, 어머니는 카스트르(타른 주) 출신 위그노(Huguenot, 프랑스 개신교도)라는 사실도 재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에서 나온 나머지 서열들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배제법을 통해 "마라에게 흔히 추정되어 온 질병들의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옴(scabies), 매독(syphilis), 나병(leprosy), 결핵성 임파절염(서막), 아토피성 습진, 당뇨병성 칸디다증(아구창) 등이 모두 후보에서 탈락한 것입니다.

기회주의적 병원체, 혁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1순위 용의자는 지루성 피부염에 중복감염을 일으키는 곰팡이 말라세지아 레스트릭타(Malassezia restricta)입니다. 당시에는 이 균에 대한 치료법이 전무했고, 만약 혈류까지 침투했다면 면역 억제와 패혈증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습진의 원인이 되는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여드름균의 흔적도 함께 검출되어, 이러한 기회감염성 병원체들이 마라의 끊이지 않던 가려움증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판테온에서 사라진 유해

1794년 암살된 직후 마라는 몇 달간 판테온에 안치되었으나, 1795년 시신이 옮겨졌습니다. 파리 생트주느비에브 언덕에 다시 묻힌 그의 유해는 같은 자리에 있던 묘지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