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과학이 (부분적으로) 풀어낸 '어르네스트' 해골 미스터리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Dordogne)에서 약 100년 전 발굴된 해골 '어르네스트(Ernest)'의 정체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분석으로 드러났다. 분석 결과 이 유골은 약 600~700년 전, 즉 13세기 말부터 14세기 말 사이에 살았던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역에 한 세기 가까이 내려온 전설을 통째로 뒤엎는 결과다. 그동안 주민들은 이 해골이 평판이 좋지 않았던 19세기 인물, 어르네스트 드 폰토베르(Ernest de Fontaubert)의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과학이 (부분적으로) 풀어낸  어르네스트  해골 미스터리

'어르네스트'라는 이름을 얻은 해골은 1913년, 페리고르 베르(Périgord Vert) 한가운데 있는 생피에르드프루지(Saint-Pierre-de-Frugie) 마을 몽시구 저택(Montcigoux) 별채의 지하실을 파던 미장이들이 흙 20cm 아래에서 발견했다. 2019년 11월 28일 기준으로도 이 유골은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존재였다.

몽시구 저택의 19세기 주인이 아니었다

한 세기 동안 이 해골은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 깊이 박힌 신화의 중심에 있었다. 유리관에 봉인된 이 색다른 '거주자'의 정체를 알고 싶어 호기심 많은 방문객과 역사 애호가들이 줄을 이으며 "어르네스트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반복해 왔다.

그러다 2019년 11월 28일 목요일, 과학은 대중의 통념 일부를 산산조각 냈다. 사비로 의뢰된 방사성탄소 감정을 보르도의 독립 연구소 시람(CIRAM)이 수행한 결과, 이 해골은 19세기 몽시구 저택의 주인 어르네스트 드 폰토베르가 아니라 1278년에서 1388년 사이에 살았던 개인의 유골인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어르네스트는 어르네스트가 아니었던 셈입니다"라고 1987년 어르네스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전직 기자 마르크 윌마르(Marc Wilmart)와 2011년부터 이 유골을 추적해 온 아마추어 계보학자 베르나르 오마송(Bernard Aumasson)이 밝혔다. 그들은 그동안 내려온 이야기가 전부 "날조"이자 "조작"이었다고 강조한다.

과학이 (부분적으로) 풀어낸  어르네스트  해골 미스터리

생피에르드프루지 시장이자 몽시구 저택 소유주 질베르 샤보(Gilbert Chabaud)가 '어르네스트'라 불리는 해골 앞에 서 있다. 2019년 11월 28일 © AFP - GEORGES GOBET

어르네스트는 몽시구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러 가설 중 하나지만, 백년전쟁 당시 성을 포위 공격하다가 전사한 군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오마송은 추측한다. 유골은 전사 직후 "급히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는 또한 이 유적 근처에 폐허가 된 묘지가 있었으며, 이곳이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맞서던 최전선이었다는 점도 지목했다. 과학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이제 "더럽혀지고 진창에 빠졌던" 한 가문의 명예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발견 당시 당국은 이 해골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신원 미상의 유해는 저택 주인의 손에 넘어갔다. '어르네스트'는 한동안 잊혀지는 듯했지만, 1933년 쿠리에 뒤 상트르(Courrier du Center)의 칼럼니스트 앙투안 발레리(Antoine Valérie)가 이 해골이 어르네스트 드 폰토베르의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사건은 다시 불타올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르네스트는 1850년 여동생 어르네스틴(Ernestine)과 함께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열풍 속으로 떠났고, 귀국 후 동생 아르튀르(Arthur)가 질투와 두 사람 사이의 근친상간 관계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혀 도끼로 그를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과학이 (부분적으로) 풀어낸  어르네스트  해골 미스터리

생피에르드프루지에 있는 몽시구 저택. 2019년 11월 28일 © AFP - GEORGES GOBET

이 전설은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졌다. 1958년에는 로베르 마르제리(Robert Margerit)의 소설 《이리의 땅(La Terre aux Loups)》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1987년에는 마르크 윌마르의 영화 《어느 범죄의 이야기(Histoires d'un crime)》가 이를 다시 널리 알렸다. 유골이 안치된 중세 탑은 '산책 명소'로 자리 잡기까지 했다.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마을 주민들의 후손들이 어르네스트를 보러 찾아옵니다"라고 이 450명 규모 마을의 시장이자 1977년부터 저택을 소유해 온 질베르 샤보는 웃으며 말했다.

2011년 말 문화유산의 날 행사에서 베르나르 오마송은 마음속 의심을 참지 못하고 조사에 착수하기로 결심했다. 2013년에는 미국 계보학자의 도움으로 캘리포니아행 흔적을 쫓았고,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어르네스트는 몽시구로 돌아온 적이 없었다. 그는 1862년 소지했던 금을 강탈당한 채 살해되어 미국 켄터키주 케이브시티(Cave City) 인근에 묻혔던 것이다.

2016년에는 프랑스 국헌병대 범죄연구소(IRCGN)의 인류학자들이 유골을 검시했지만, 심각하게 훼손된 뼈의 상태 앞에서 조사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샤보 시장은 이제 조사가 "종결"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설이 앞으로도 "강한 확신"을 갖고 살아남으리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