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분석을 통해 1238년 러시아에서 벌어진 몽골 금장군(골든 호드)의 학살 희생자들 사이에 혈연관계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러시아의 중세 대량 매장지에서 가족 관계로 추정되는 유해들이 확인된 것이다.
종말처럼 다가온 몽골 기병대
문헌 기록에 따르면, 13세기 오늘날의 러시아 땅에 몽골이 등장한 것은 마치 종말의 기병대가 쏟아져 들어온 듯한 참화였다. 징기스칸의 손자이자 금장군(킵차크 칸국)의 창시자인 바투 칸(1205?~1255)이 이끄는 십만이 넘는 대군이 이 땅을 덮쳐 초토화시켰다. 13세기 전반부 동안 몽골은 중국, 중앙아시아, 캅카스, 볼가 불가리아, 동유럽 평원을 정복해 나갔고, 이윽고 서유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몽골군은 1236년부터 1240년까지 루스 공국들을 유린하며 학살과 방화, 주민 포획의 행렬을 이어갔고, 마침내 1240년 12월 6일 키이우를 완전히 파괴했다.
대량 매장지에서 확인된 가족의 유해
민간인에 대한 이러한 폭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야로슬라블에서 1238년 몰살당한 한 가족의 유해가 그 증거다. 이들은 대량 매장지에서 발견된 수백 구의 시신 가운데 일부였다. 유전자 분석 결과, 55세 이상의 어머니와 그 딸, 그리고 20세 전후로 추정되는 손주의 유해가 각각 구분되었다.
이 성과는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와 모스크바 물리기술 연구소의 연구진이 얻은 것으로, 2019년 8월 말 모스크바 인류학 박물관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다. 라이브사이언스(Live Science)가 보도한 이 자료는 러시아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이 몽골의 끔찍한 침입을 겪었던 비극의 역사 한 장면을 들여다보는 창을 열어준다.

13세기 러시아 침공 당시 금장군 몽골군의 모습. 출처: Leemage/AFP
유해가 말해주는 공동의 특징
발굴을 지휘한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부소장 아샤 엥고바토바(Asya Engovatova)에 따르면, 이 가족 세 명은 여러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두개골 천개에 생긴 골종(비정형적인 뼈 돌기)과, 척수에 영향을 미치는 선천성 기형인 척추이분증(spina bifida)의 흔적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함께 발굴된 아홉 개 대량 매장지의 다른 희생자들보다 충치가 훨씬 많았다. 연구진은 이를 '설탕과 꿀'이 풍부한 식습관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며, 높은 사회 계층에 속했음을 시사하는 단서로 해석하고 있다.
이 세 유족은 발굴된 건물 잔해로 미루어 웅장한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야로슬라블 성채 한복판, 열다섯 명가량의 다른 유해들 곁에서 발굴되었다. 당시 상황을 '피에 잠긴 도시'라고 묘사하는 역사 연대기들은 야로슬라블 학살을 블라디미르 대공국에 대한 몽골의 군사 작전과 연결 짓는다.
2005년부터 이 몽골의 파괴 규모가 본격적으로 측정되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야로슬라블에서만 300명이 넘는 유해가 발견되었고, 모두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금장군의 칸들은 15세기 말(1241~1480년)까지 서시베리아와 훗날 러시아 남부가 될 지역을 통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