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해안에 새겨진 선사시대의 발자국
영국 잉글랜드 동부 노퍽(Norfolk) 주의 작은 해안 마을 해피스버그(Happisburgh)에서 고고학계를 뒤흔든 중대한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약 85만 년에서 95만 년 전에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인류의 발자국 49개입니다. 이 가운데 12개는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연구진이 당시 사람들의 보행 방식과 체격까지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발자국의 주인, '호모 안테세소르'
발자국을 남긴 무리는 성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몇몇 어린이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연구진은 이들이 거의 확실하게 호모 안테세소르(Homo antecessor) 종에 속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호모 안테세소르는 약 120만 년 전부터 80만 년 전 무렵 유럽에서 살았던 초기 인류로,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유적에서 처음 확인된 종입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이 일대는 지금과 지형이 크게 달랐습니다. 템스 강이 더 북쪽 경로로 흐르며 이 해안 근처에서 바다와 만나 넓은 하구와 갯벌을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 무리가 갯벌에서 게, 조개, 해조류 등을 채집하던 중 발자국을 남긴 것으로 추정합니다. 즉 이 발자국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먹이를 구하던 활동 현장이 그대로 굳어진 흔적인 셈입니다.
파도의 침식이 만든 우연한 발견
발자국은 퇴적층 위에 각인된 상태로 잠들어 있었고, 수천 년에 걸친 파도의 침식으로 해변이 깎여 나가면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발견 직후 연구진은 곧바로 3차원 스캔과 사진 측량 기법으로 정밀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매우 다행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발자국은 노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밀물과 파도에 의해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시 남긴 디지털 기록 덕분입니다.
북유럽 최고(最古)의 인류 존재 증거
이 발자국은 현재까지 북유럽에서 인류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증거이며, 유럽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오래된 축에 꼽힙니다. 아프리카 밖에서 발견된 인류 발자국 중에서도 손꼽히는 것이어서, 초기 인류가 언제 어떤 경로로 유럽으로 들어왔는지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발자국의 크기와 깊이를 분석한 결과, 무리의 키는 약 93cm에서 173cm 사이로 다양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인과 어린이가 함께 이동했다는 뜻으로, 당시 인류 집단이 가족 단위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바닷물에 지워질 뻔했던 이 발자국은, 인류가 유럽을 걸어온 긴 역사의 소중한 첫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