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9000년 전 중국인들은 장례식에서 '쌀 맥주'를 마셨다

흰색, 블론드, 적갈색, 갈색… 우리가 흔히 아는 맥주의 색깔들입니다. 하지만 무려 9,000년 전 중국에서는 '쌀 맥주(rice beer)'가 마셔졌으며, 이는 매우 특별한 자리에서였습니다.

9000년 전 중국인들은 장례식에서  쌀 맥주 를 마셨다

연구진이 분석한 20개의 용기 가운데 8개에서 맥주 잔류물이 검출되었습니다.

맥주의 역사는 농업과 정착 생활만큼 깊다

맥주 제조의 역사는 농업과 정착 생활의 시작만큼이나 깊습니다. 근동 지방에서는 약 13,000년 전에 비슷한 음료가 양조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기원전 4천 년기로 추정)은 최근 이집트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인간의 맥주에 대한 애호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옛날 맥주가 항상 오늘날처럼 맛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홉의 방부 효과가 발견되어 맥주에 첨가된 것은 중세에 이르러서였고, 오늘날 호불호를 갈라놓는 쌉싸름한 맛 역시 바로 이 홉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음료를 '맥주'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실 당화(saccharification)와 발효(fermentation), 이 두 단계의 변화를 거친 발효 음료라면 모두 맥주로 볼 수 있습니다. 포도주나 꿀술은 과일이나 꿀처럼 효모와 접촉하면 알코올로 변하는 당분으로 만들어지는 반면, 맥주는 쌀·조·보리·옥수수 등 전분을 함유한 원료로 빚어집니다. 전분은 먼저 효소에 의해 당으로 전환되어야 하고(당화), 이 당이 효모와 만나 알코올로 변하는 것(발효)입니다.

고대인들은 어떤 자리에서 술잔을 들었을까?

기원전 4천 년기 이후에는 문자 기록을 통해 맥주 소비의 맥락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이전 시기의 역사학자들은 고고학적 데이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이런 데이터는 술의 구성 성분보다는 그 역할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죠. 그럼에도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 연구팀은 중국에서 맥주가 지닌 역할에 대한 초기 해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고, 그 결과는 학술지 PLOS ONE에 게재되었습니다.

그 음료는 '쌀 맥주'였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서 인구의 정착은 기원전 7,000년경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주거지는 비교적 소박했지만, 공동 주거 시설·저장 시설·무덤을 갖춘 더 발전된 정착지도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연구의 대상인 차오터우(Qiaotou) 유적은 바로 이러한 원시 정착지 중 하나입니다.

9000년 전 중국인들은 장례식에서  쌀 맥주 를 마셨다

차오터우 유적의 위치. 출처: PLOS ONE

연구팀은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 중 일부의 형태가 훗날 술을 담아 마시던 '후(Hu) 항아리'와 닮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것들이 실제로 술을 담는 데 쓰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용기 내부 표면에서 추출한 미세 화석 잔류물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미세 식물성(전분 입자와 규산질 결정체) 및 미생물성(곰팡이와 효모) 잔류물을 확인했고, 토양에서 채취한 대조 샘플과 비교해 자연 현상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9000년 전 중국인들은 장례식에서  쌀 맥주 를 마셨다

'후(Hu)' 토기. 출처: Leping Jiang

"분석 결과, 토기 용기는 맥주, 즉 가장 넓은 의미의 발효 음료를 담는 데 사용되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쌀(Oryza sp.)과 좌수자(Job's tears, Coix lacryma-jobi)라 불리는 곡물, 그리고 미확인 덩이줄기로 만든 발효 음료입니다."라고 연구의 공동 저자이자 다트머스 대학교 인류학 조교수인 왕자징(Jiajing Wang)은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습니다. 이 음료는 꿀과 과일이 첨가된 같은 시기 자후(Jiahu) 유적의 술과는 상당히 다른 '쌀 맥주'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의 문헌 기록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맥주 제조에는 세 가지 당화제가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의 침, 싹틔운 곡물, 그리고 곰팡이 발효종입니다. 이번 분석에서 항아리 잔류물에서 곰팡이 흔적이 확인되면서, 차오터우 유적은 해당 기법이 사용된 가장 오래된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왕 교수는 "남긴 쌀에 곰팡이가 피었을 때 사람들은 그 곡물이 점점 더 달고 알코올 기운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라며 "당시 사람들이 곰팡이 핀 곡물의 생화학적 원리를 알았겠지만, 발효 과정을 관찰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경험적으로 익혔을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단서들은 의례적 소비와 부합한다

몇 가지 단서는 이 음료가 축제를 상징하는 음료였음을 시사합니다. 첫째, 맥주 항아리들은 생활 공간의 가장자리에서 발견되어 주민들의 일상용품이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둘째, 주거지 근처에서 출토된 소박한 토기들과 달리 차오터우의 용기들은 상당히 높은 품질을 자랑합니다. 셋째, 당시 재배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벼의 수확은 여전히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연구진은 발표문에서 선사시대 수렵채집인이 하루 먹을 만큼의 야생 벼를 모으는 데 8시간 이상이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맥주가 특별한 날에만 허락된 음료였다는 점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차오터우 유적에서 맥주는 장례 의식 중에 소비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연구진은 토기 근처에서 두 구의 인골을 발견했으며, 함께 출토된 돌들은 의례용 건축물로 추정되는 구조물의 존재를 시사합니다.

맥주 소비의 사회적 역할은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맥주는 교역의 대상이었고, 안데스 지역에서는 그 생산이 사회관계를 규정하고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차오터우의 데이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농경이 본격화되기 이전, 아직 평등한 사회였던 시기의 맥주 소비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맥주야말로 모든 자리에 어울리는 음료임을 확인해 주는 연구 결과이지만, 물론 언제나 적당히 즐기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