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펼치지 않고도 편지를 읽는다! 봉인된 17세기 서신의 비밀을 여는 기술

봉투가 보편화되기 훨씬 이전, 사람들은 편지를 정교한 종이 접기로 보호했습니다. 오늘날 첨단 기술이 그 봉인된 편지들의 자루를 다시 열어내고 있습니다.

펼치지 않고도 편지를 읽는다! 봉인된 17세기 서신의 비밀을 여는 기술

▲ 브리엔 컬렉션에 소장된 1697년 편지 한 통

메시지의 기밀 유지는 현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약 300년 전, 편지 내용이 함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발신자들은 종이를 정교하게 접은 뒤 왁스로 봉인했습니다. 봉투가 널리 보급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830년 무렵부터입니다. 그 덕분에 아직 봉인된 채 남아 있는 당시 편지들이 다수 발견되었지만, 손상 없이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때로는 메스로 잘라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MIT와 캠브리지 대학 연구진이 이런 편지를 가상으로 펼쳐 그 속 비밀을 여는 기술적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종이 접기는 곧 '물리적 암호학'

브리엔 컬렉션은 유럽에서 들어온 우편물을 네덜란드 전역으로 배달하던 네덜란드 우체국장 시몬 드 브리엔(Simon de Brienne)의 상자에 담긴 물건들입니다. 1680년부터 1706년 사이 배달되지 못한 편지들이 담겨 있으며, 헤이그 우편박물관 소장품에서 옮겨졌습니다. 당시에는 우표가 없었고, 배달부는 편지를 안전하게 전달한 대가로 수신자에게서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소가 불완전하거나 부정확해 배달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이런 편지들은 훗날 누군가 찾으러 올 것에 대비한 잠재적 금전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져 보관되었습니다.

연구진은 브리엔의 상자에서 개봉된 편지 2,571통, 서신 조각과 기타 문서, 그리고 한 번도 열리지 않은 편지 꾸러미 577개 등 총 3,148개의 물건을 확인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봉인된 편지들은 잘라내 손상시키지 않고는 연구하거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펼치지 않고도 편지를 읽는다! 봉인된 17세기 서신의 비밀을 여는 기술

▲ 브리엔의 상자. 출처: Unlocking History Research Group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 저자들은 약 25만 통의 편지를 분석하며 다양한 접기 기법을 폭넓게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편지 접기가 실질적으로 '물리적 암호학'에 해당함을 입증했습니다. 봉인을 여는 순간 편지는 되돌릴 수 없이 손상되어 수신자에게 "누군가 이미 읽었다"는 사실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수십 가지 접기 기법이 확인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보안 점수'가 산정되었습니다. 다만 이 점수는 대부분 이미 개봉된 문서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X선으로 편지를 '가상 개봉'하다

보안 점수를 더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연구진은 상자 속 봉인된 편지 꾸러미를 대상으로 가상 개봉에 도전했고 성공했습니다. 먼저 시분해·고대비 X선 미세컴퓨터단층촬영(XMT)으로 편지를 디지털화한 뒤 3D 재구성으로 복원하고, 연구 과정에서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편지를 열었습니다. 이 소프트웨어는 접힌 편지의 여러 층을 식별·분리하고, 접힘 패턴을 시각화하며 잠금 과정을 단계별로 재현해 마치 영상 속에서처럼 편지를 가상으로 펼칠 수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 또한 판독이 가능합니다. 사용된 잉크가 종이와 다른 명암 대비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문서 DB-1627(대표 이미지에 봉인된 상태로 실린 편지)은 봉인된 이후 처음으로 읽혔습니다. 1697년 7월 31일 자크 세나크(Jacques Sennacques)가 헤이그에 정착한 프랑스 상인이자 사촌인 피에르 르 페르(Pierre Le Pers)에게 보낸 편지로, 다니엘 르 페르(Daniel Le Pers)라는 인물의 사망 통지서 공증 사본을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이 편지는 끝내 수신인에게 닿지 못했고, 아마 상속 문제와 관련된 일은 원만히 마무리되지 못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편지 말미에서 세나크는 가족의 근황을 묻고 사촌에게 신의 은총을 빌며 축복을 보냈습니다.

펼치지 않고도 편지를 읽는다! 봉인된 17세기 서신의 비밀을 여는 기술

▲ 가상으로 펼쳐진 DB-1627 편지. 출처: Unlocking History Research Group

이 방법은 총 네 통의 편지에 성공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연구진은 박물관 곳곳에 아직 개봉되지 않은 편지가 수만 통에 달한다며, 이 기술이 그중 많은 편지의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제로 개봉되어 손상된 편지라 해도 접힌 방식을 통해 당시 각 지역과 시대마다 서신 보안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