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2000년 만의 첫걸음,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라크를 찾은 역사적 순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과 불안정한 치안 상황이라는 두 겹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황 프란치스코는 2021년 3월 5일(금) 이라크 방문길에 올랐다. 이라크 국민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려온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000년 만의 첫걸음,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라크를 찾은 역사적 순간

바그다드의 한 시민이 거리에 걸린 교황 포스터 앞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교황은 2021년 3월 5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의 일정으로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다.

이것은 정말로 역사적인 일이다. 기독교 탄생 이후 무려 2000년 만에 교황이 이라크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요람이라 불리는 중동의 이 나라는 오랜 전쟁의 상처에 더해 최근에는 지하디스트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유혹과 폭력으로 깊은 고통을 겪어 왔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번 사흘간의 일정 동안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뿌리를 지키며 살아남은 기독교 소수 공동체를 직접 위로하고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

순교의 현장, 시리아 가톨릭 대성당 방문

8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이번 방문에서 1,600km가 넘는 긴 여정을 소화해야 했다. 바그다드에 도착해 이라크 정부 요인들을 접견한 뒤, 첫 번째 주요 일정지는 시리아 가톨릭 성모 중재 대성당이었다. 2010년 10월, 이곳에서 지하디스트들의 피비린내 나는 인질극이 벌어져 무려 44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은 바 있었다.

이어 3월 6일 토요일에는 시아파 세계 최고 권위자인 알리 시스타니 아야톨라를 만나기 위해 나자프로 향했다. 3월 7일 일요일에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의 수도 에르빌에서 최소 8천 명의 신자 앞에서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으며, 그에 앞서 니네베 평원, 모술, 그리고 이라크 최대의 기독교 도시인 카라코시를 순례했다. 모술과 카라코시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이슬람국가의 억압 아래 놓였던 '순교의 도시'였다.

2000년 만의 첫걸음,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라크를 찾은 역사적 순간

2017년 이슬람국가에 의해 유린당한 모술 북부의 한 기독교 교회 내부. 교황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던 곳이다. ©Zaid Al-Obeidi /AFP

이후 교황은 남부로 이동해 구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우르를 찾았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이곳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 공동 조상으로 여겨지는 아브라함의 출생지다.

칼데아, 아르메니아 정교회, 개신교 — 이라크의 기독교 공동체

2019년 아부다비에서 알아자르 대학의 수니파 이맘과 만났던 교황은, 이번에는 이라크 다수파인 시아파 지도자들과의 만남에 나섰다. "교황의 메시지는 교회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서 있다는 것"이라고 모술과 아크라의 칼데아 가톨릭 대주교 나집 미카엘이 AFP에 말했다. 그는 2014년, 모술의 고대 기독교 필사본 800여 점을 이슬람국가 전투원들로부터 목숨을 걸고 구출해 낸 인물이기도 하다.

2000년 만의 첫걸음,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라크를 찾은 역사적 순간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 에르빌의 한 연구 센터에서 이슬람국가의 파괴로부터 구조된 모술의 고대 기독교 필사본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Safin Hamed / AFP

이라크의 기독교 공동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체 중 하나다. 가톨릭 계열의 칼데아 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정권 시기(1979~2003) 약 150만 명에 달했던 이라크 기독교인의 수는 현재 40만 명으로 급감했다. 상당수가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로 피신했지만, 절반 가까이는 이미 유럽, 호주, 캐나다, 미국 등 해외로 떠난 상태다.

AFP에 따르면 이번 역사적인 방문에는 절반이 기자인 총 150명의 수행단이 교황과 동행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안보 문제 역시 이번 여정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라크는 아직도 공격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2021년 1월 21일에는 바그다드 중심부의 한 시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32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3월 3일에는 미국 주도 연합군이 주둔하는 서부 안바르주의 아인 알아사드 군사기지에 로켓탄 10발이 떨어지기도 했다.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여전히 이라크 땅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 계획이 무산된 아픔을 딛고,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라크 국민들을 두 번째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B.A. with 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