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얀 필립 렘츠마(Jan Philipp Reemtsma): 담배 왕조를 버리고 문화를 후원한 함부르크의 백만장자

얀 필립 렘츠마(Jan Philipp Reemtsma)는 백만장자이자 교수, 문학 연구가, 작가, 그리고 함부르크 사회연구소(HIS)의 설립자입니다. 동시에 그는 독일에서 가장 충격적인 납치 사건 중 하나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얀 필립 퓌르히테고트 렘츠마(Jan Philipp Fürchtegot Reemtsma)는 1952년 11월 26일, 담배 왕조 렘츠마 가문의 후손으로 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가업을 자신의 미래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독일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26세에 상속받은 수백만 마르크 상당의 담배 회사 지분을 즉시 매각해 버렸습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지닌 백만장자

1977년 작가 아르노 슈미트(Arno Schmidt)와의 만남은 젊은 렘츠마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병약해진 작가가 평온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35만 마르크를 제안했는데, 이는 당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받는 상금에 맞먹는 금액이었습니다. 2년 뒤 슈미트가 세상을 떠나자 렘츠마는 아르노 슈미트 재단을 설립하고 슈미트 전집의 공동 편집자로 나섰습니다.

학문과 문화의 후원자

1984년 렘츠마는 함부르크 과학·문화 진흥 재단과 함부르크 사회연구소(HIS)를 설립했고,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이 연구소를 이끌었습니다. 연구소가 1995년 개최한 독일 국방군(Wehrmacht) 범죄 전시회는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비판자들은 국방군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비난이라며 항의했고, 지지자들은 국방군의 역할을 아낌없이 규명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여기에 사진 출처 표기 오류까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전시회는 이후 수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펼친 활동

렘츠마는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도 탄탄한 평판을 쌓았습니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독일 현대문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대학 밖 한자 도시 함부르크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하펜슈트라세(Hafenstraße)의 무허가 점거 주택 8채를 상징적인 가격에 매입해 협동조합에 넘기기로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나치 시대 노이엔가메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의 강제 노동으로 이익을 얻은 함부르크 기업들이 추모비 건립에 재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극적인 납치 사건 중 하나

렘츠마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은 아마도 1996년의 납치 사건일 것입니다. 당시 43세였던 그는 밤낮으로 33일 동안 지하실에 감금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1996년 3월 25일 저녁, 함부르크 블란케네제 지역의 자신의 저택에서 습격을 당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범인들은 그를 폭행하고 눈을 테이프로 가린 뒤, 납치를 위해 미리 임대해 둔 오스터홀츠 지역 갈스테트의 주택으로 끌고 갔습니다. 지하 감금실에서 렘츠마는 죽음의 공포와 씨름해야 했습니다. 몸값 전달은 두 번 실패했고, 세 번째 시도에서야 성공했습니다. 가족은 3,000만 독일 마르크를 지불했고, 이틀 후 렘츠마는 석방되었습니다. 언론은 인질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납치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고, 그제서야 대중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납치의 배후 조종자 토마스 드라크(Thomas Drach)에 대한 수색은 오랫동안 실패를 거듭했지만, 1998년 아르헨티나에서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년 뒤 독일로 송환된 드라크는 2001년 징역 14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공범 두 명은 납치 사건 직후 스페인에서 체포되어 각각 징역 5년과 10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또 다른 공범 한 명은 1998년 자수해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납치범 재판에서 렘츠마는 공동원고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또한 저서 『임 켈러(Im Keller)』에서 자신의 납치, 인질 생활, 석방 과정을 직접 다루었으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지하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