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 독일 후주움(Husum)에서 태어난 파니 츠 레벤트로(Fanny zu Reventlow). 이 백작부인은 위트와 풍자가 넘치는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화가로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홀어머니였던 그녀는 당대 예술계에서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카 츠 레벤트로는 1871년 5월 18일, 독일 제국이 수립된 바로 그 해에 후주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18년 제국이 무너진 해, 백작부인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제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정반대되는 삶을 그 자체로 구현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술과 여성을 두고 보인 모순적인 태도
레벤트로 자신도 극명한 대조로 이루어진 인물이었습니다.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가족 곁을 떠나 보헤미안의 길을 걸었죠. 그녀는 "여성은 진정한 예술 작품을 창조할 수 없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놀랄 만큼 위트 있고 풍자적인 소설과 에세이를 남겼습니다. 여성이 잘 살아야 한다고 믿었지만, 단지 누군가의 아내로 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유를 택했고, 그 대가로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원한다" — 그녀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녀의 소원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바로 그 모순이 그녀라는 인간을 매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레벤트로 가문
그녀는 프로이센 지행관(地方行官) 루트비히 그라프 츠 레벤트로(1824~1893)의 다섯째 자녀였습니다. 어머니 에밀리(1834~1905)는 랑차우 백작가의 딸이었습니다. 가문은 시인 테오도어 슈토름 등과 교류할 만큼 명망이 높았으며, 파니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유서 깊은 귀족, 즉 이 지역과 덴마크의 역사를 함께해 온 가문의 핏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카 츠 레벤트로의 삶의 발자취
레벤트로는 후주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유년기를 음울했다고 회고했지만, 그녀는 평생 북해를 그리워했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하자 가족은 뤼베크로 이주했습니다. 파니는 또래 그리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많은 책을 읽었는데, 특히 사회 비판적인 문학에 심취했습니다.
화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날로 커졌고, 결국 그녀는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뮌헨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보헤미안의 삶을 살았고, 슈바빙 예술계의 중심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홀어머니의 삶, 그리고 끊임없는 빈곤
그녀는 아이 아버지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아들을 낳았습니다. 홀어머니였음에도 예술계에서는 존경받는 존재였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늘 돈이 부족해 몇 차례이사를 반복해야 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잦은 병으로 수술을 받기도 했고, 우울증에도 시달렸습니다.
화가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작가로서는 확실히 이름을 알렸습니다. 《엘렌 올레스티에른(Ellen Olestjerne)》, 《파울에서 페드로까지(Von Paul zu Pedro)》 같은 소설들이 그 결과물입니다. 이후 그녀는 아스코나로, 다시 스위스로 이주했으며, 《돈 콤플렉스(Das Geldkomplex)》 등 추가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프란치스카 츠 레벤트로는 1918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자전거 사고의 여파로 47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귀족의 태생과 보헤미안의 자유 영혼 사이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추구했던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