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아라비아의 로렌스(T. E. 로렌스, 1888~1935) 전기: 옥스퍼드 고고학자에서 아랍 반란의 영웅까지


아라비아의 로렌스(T. E. 로렌스, 1888~1935) 전기: 옥스퍼드 고고학자에서 아랍 반란의 영웅까지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흔히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에 맞서 아랍 반란을 조직하고 이끈 영국의 장교이자 작가다. 그의 저서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 1926)은 단순한 전쟁 회고록을 넘어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그의 모험과 아랍 반란 개입에 대한 기록을 뛰어넘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

영국 귀족 출신의 고고학자

1888년 8월 16일 웨일스에서 태어난 T. E. 로렌스는 귀족 가문 출신이다.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절 그는 역사와 고고학에 대한 열정을 빠르게 키웠다. 1907년과 1908년에는 프랑스의 중세 건축물을 탐사하기 위해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떠났고, 이듬해에는 십자군 전쟁이 유럽의 군사 건축, 특히 요새 기술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한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시리아를 찾았다. 1910년에는 대영박물관의 메소포타미아 고고학 발굴단에 합류한 뒤, 시나이반도로 건너가 아랍어를 익혔다.

아라비아의 로렌스(T. E. 로렌스, 1888~1935) 전기: 옥스퍼드 고고학자에서 아랍 반란의 영웅까지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이 땅을 탐사하며 접한 동양 문화는 그를 깊이 매료시켰고, 그는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 곧바로 그곳으로 돌아왔다. 터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를 오가며 그는 열정적이고 영감 넘치는 학자로 빠르게 명성을 쌓았다. 아랍 민족의 관습에 정통하고 그들의 언어에 능통했던 그는 1914년 런던의 정보국에 발탁되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게릴라 지도자

1914년 10월 영국군에 입대한 로렌스는 문화적·언어적 지식을 바탕으로 1916년 6월,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던 아랍 반군 지도자 파이살 이븐 후세인(Fayçal ibn Hussein)의 연락 장교로 임명되었다. 폭발 작전과 대담한 작전이 이어지는 서사시 같은 여정의 시작이었다. 아랍의 대의에 깊은 공감을 느꼈던 로렌스는 뛰어난 게릴라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영국 장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으며, 언제나 런던의 중동 지역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와 영국이 중동에서 위임통치권을 분할하는 것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T. E. 로렌스, 1888~1935) 전기: 옥스퍼드 고고학자에서 아랍 반란의 영웅까지영국이 이라크를 통치하는 방식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는 훗날 정치 활동(한때 처칠의 고문을 지냄)을 접고, RAF(영국 왕립공군)에서 일개 사병으로 군 경력을 다시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불멸하게 만든 것은 1920~30년대에 집필한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이다. 이 책은 문학적 가치를 넘어 20세기 후반의 게릴라전과 반란 전쟁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5년 5월 19일,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는 도싯(Dorset)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 초를 풍미하던 한 신화가 이렇게 사라졌다.

이미 명성을 얻고 있던 로렌스는 죽음 이후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의 걸작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에서 피터 오툴(Peter O'Toole)의 연기를 통해 다시 한번 불멸의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참고문헌

- 자크 베누아스탱(Jacques Benoist-Méchin), 『아라비아의 로렌스: 산산조각 난 꿈』, 페랭(Perrin), 2007.

- 앙드레 기욤(André Guillaume), 『아라비아의 로렌스』(전기), 페이야드(Fayard), 2000.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더 깊이 알고 싶다면

- 『아라비아의 로렌스』 프레스티지 에디션 3 DVD, 데이비드 린 감독, TF1 비디오,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