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잔 바레(Jeanne Barret): 지구를 일주한 최초의 여성 탐험가이자 식물학자

잔 바레(Jeanne Barret, 1740~1807)는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로, 이름은 Baret 또는 Baré로 표기되기도 하며, 지구를 일주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필리베르 코메르송과의 인연

농부 장 바레(Jean Barret)와 잔 포샤르(Jeanne Pochard) 사이에서 태어난 잔 바레는 1740년 7월 27일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마을 라 코멜(La Comelle)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례 기록을 제외하면 그녀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대해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훗날 부가빌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잔은 소송으로 재산을 잃은 고아였다고 하나, 역사가들은 그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사연을 꾸몄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가난한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으며, 1760년대 초 자연학자 필리베르 코메르송(Philibert Commerson)의 가정교사로 그를 섬기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젊은 홀아비였던 코메르송은 곧 잔과 연인 관계가 되었고, 잔은 1764년 임신합니다. 아들 장피에르(Jean-Pierre)는 1764년 12월에 태어났지만, 잔은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고, 아이는 위탁 가정에 맡겨진 뒤 몇 달 만에 요절했습니다.

남장하고 올라탄 세계일주선

이듬해 코메르송은 탐험가 부가빌이 이끄는 세계일주 항해에 초청받습니다. 함대는 부되즈(Boudeuse)호와 에투알(Étoile)호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코메르송은 간호사이자 식물학 활동의 조수로서 잔 바레의 동행을 간절히 바랐지만, 당시 여성이 승선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잔은 '장 바레(Jean Baret)'라는 남자 이름으로 코메르송의 시종 행세를 하며 남장을 한 채 항해에 합류하게 됩니다.

1766년 12월, 두 사람은 에투알호에 승선했습니다. 실어 나른 방대한 짐 덕분에 넓은 선실을 얻을 수 있었고, 이곳에서 필요한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며 변장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승선 사실은 부가빌 본인의 저술과 코메르송의 기록은 물론, 나소-지겐 공(公)과 에투알호의 군의관 프랑수아 비베스(François Vivès) 등 다른 승선원들의 회고에도 등장합니다.

용감한 탐험가, 성실한 식물학자

배 위에서 잔 바레는 멀미와 만성 위궤양으로 고생하는 필리베르를 돌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습니다. 본격적인 탐사와 표본 채집은 남미 대륙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코메르송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잔은 장비를 짊어진 일꾼 역할을 맡아, 이들이 항해에서 가져온 약 5,000점의 표본 중 상당 부분을 직접 채집했습니다. 코메르송은 자신의 기록에서 그녀를 가리켜 '짐수레'라고까지 불렀는데, 늘 남자로 통하던 젊은 잔은 어떤 험한 지형도 마다하지 않으며 강인함과 용기로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항해 외에도 잔은 표본 목록화와 관찰 기록 작성을 도우며 충실한 조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정체가 드러나다

부가빌의 기록에 따르면, 이 무렵부터 잔 바레의 성별에 대한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없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변장이 발각된 시점은 1768년 4월, 타히티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섬에 내린 순간 타히티 원주민들이 잔을 에워싸며 그녀가 여자라고 주장했고, 결국 두 사람은 배로 돌아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승선원들마다 증언은 조금씩 다르지만, 적어도 함대가 타히티에 닿았을 때쯤이면 승선원들은 잔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항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고, 모리셔스에서 함께 내렸습니다. 잔은 그곳에서도 필리베르를 계속 보조하며, 1770년대 초에는 그와 함께 마다가스카르 표본 채집 탐사에 동행했습니다.

'비범한 여인'

건강이 좋지 않던 필리베르 코메르송은 1773년 모리셔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홀로 남겨진 잔 바레는 한동안 포트루이(Port-Louis)에서 선술집을 차리고 운영했습니다. 1774년 5월 17일에는 프랑스 해군 장교 장 뒤베르나(Jean Dubernat)와 결혼했고, 이듬해 부부는 프랑스로 귀환했습니다. 이로써 잔 바레는 지구를 일주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출항 전 코메르송이 자신에게 남겨두었던 상속 재산을 물려받은 그녀는 남편과 함께 고향 페리고르(Périgord) 지방의 생올레(Saint-Aulaye) 마을에 정착했습니다. 1785년에는 루이 16세 국왕으로부터 연금 200리브르를 하사받았는데, 연금 하사 문서에는 그녀의 용기와 공로를 기리며 '비범한 여인'이라 칭하고 '모범적인 태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잔 바레는 1807년 8월 5일 생올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2년에는 남미에서 발견된 가지과(Solanaceae) 식물의 한 종이 그녀를 기리기 위해 솔라눔 바레티아에(Solanum baretiae)로 명명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