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에크포드(Elizabeth Eckford, 1941년~)는 아칸소주에서 백인 전용이던 학교에 최초로 입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학생 그룹, 이른바 리틀록 나인(Little Rock Nine)의 일원입니다. 그녀와 동료들은 단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극심한 폭력과 적대에 맞서야 했습니다.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
엘리자베스 에크포드는 1941년 10월 4일, 미국에서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에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학교는 인종별로 분리되어 있었고, 엘리자베스는 흑인 학생들을 위한 학교에 다녔습니다.
1954년 5월, 미국 연방 대법원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 판결을 통해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이 위헌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수용되거나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아칸소주에서는 백인 학생 전용 학교들이 흑인 학생의 입학을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리틀록 나인의 등장

1957년 9월, 아홉 명의 흑인 학생들이 그때까지 백인만 다니던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15세였던 엘리자베스는 미니진 브라운-트리키, 글로리아 레이 칼마크, 멜바 패틸로 빌스, 델마 마더셰드, 어니스트 그린, 제퍼슨 토머스, 테런스 로버츠, 칼로타 월스 라니에와 함께 이 역사적인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인종 통합에 강경히 반대했던 아칸소 주지사 오벌 포버스(Orval Faubus)는 아홉 명의 학생들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주방위군을 파견했습니다. NAACP는 데이지 베이츠(Daisy Bates)를 통해 학생들을 호위하기로 결정했지만, 엘리자베스의 가정에는 전화가 없어 이 소식을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1957년 9월 4일, 홀로 마주한 군중
엘리자베스는 포버스가 주방위군을 소집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무엇을 입을지, 드레스를 제시간에 완성할 수 있을지, 내가 입은 옷이 예뻐 보일지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 어머니는 모두의 머리 스타일이 잘 되었는지, 점심값과 노트 같은 준비물을 챙겼는지 확인하고 계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침내 조용해지셨고, 우리는 가족 기도를 함께 했다. 아버지가 방 안을 왔다 갔다 걸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난다.”

엘리자베스는 혼자 학교로 향했습니다. 건물 근처에서 주방위군을 발견하고 처음에는 그들이 자신을 보호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가가자 병력들은 총구를 교차시켜 그녀의 진입을 막았고, 엘리자베스는 곧 자신이 학교 출입을 거부당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돌아서야 했습니다. 수백 명의 백인 남녀와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군중이 모욕과 린치 협박을 퍼붓으며 그녀를 따라다녔습니다. 사진작가 윌 카운츠(Will Counts)는 분노한 군중에게 쫓기는 소녀의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 사진은 인권 운동의 상징적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엘리자베스는 눈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연방군 투입과 학교 보호
그 후 몇 주 동안 리틀록 나인은 고등학교에 가는 대신 집에서 공부했습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오벌 포버스에게 주방위군 철수를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9월 말, 학생들은 도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부출입문을 통해 겨우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통합 군중은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학교를 장악했고, 어린 학생들을 교장실로 끌고 가며 목숨을 위협했습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위기에 처하자, 나인 중 한 명은 관계자가 던진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군중이 저 아이들 중 한 명을 잡게 내버려 둬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빼낼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다음 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아칸소 주방위군을 연방 정부 직할로 전환하고 군대를 리틀록에 파견해 학생들을 직접 호위했습니다. 병사들의 보호 덕분에 나인은 고등학교에 출입할 수 있었지만, 학교 안팎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증오, 폭력 행위까지 막지는 못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실제로 학교 안에서 계단에서 밀려 추락하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위기 이후의 삶
리틀록 나인은 간신히 그 해 학년을 마쳤습니다. 다음 학년도가 시작되자 연방 대법원은 흑인 학생들의 즉각적인 학교 통합을 명령했지만, 이에 맞서 통합을 막으려던 주지사는 오히려 학교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엘리자베스 에크포드는 리틀록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고, 통신 교육 과정을 거쳐 오하이오에서 역사학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엘리자베스는 미국 육군에서 5년간 정보 전문가로 복무했습니다. 그녀는 이후 웨이트리스, 역사 교사, 사회복지사, 사법 감독관, 기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녀는 NAACP가 수여하는 스피건 메달(Spingarn Medal), 조제프 빌츠 신부 상(Father Joseph Biltz Award), 그리고 의회가 주는 최고의 민간 영예인 미국 의회 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