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아스마우(본명: 나나 아스마우 빈트 셰후 우스만 단 포디오, 1793~1864)는 나이지리아 북부 소코토 칼리파국의 공주이자 시인, 교육자였습니다.
영향력 있는 지식인
소코토 칼리파국의 창시자 우스만 단 포디오의 딸이자 제2대 술탄 모하메드 벨로의 이복 여동생인 나나 아스마우는 1793년 나이지리아 북서부의 데겔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매인 미람과 파티마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당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으며, 꾸란과 순나를 비롯해 기도, 신비주의, 법학 등 철학적·종교적 텍스트를 폭넓게 공부했습니다. 아랍 문학에 깊은 조예를 지닌 그녀는 아랍어, 투아레그어, 하우사어, 풀라니어 등 네 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습니다.
소코토 칼리파국 내에서 나나와 그녀의 자매들, 그리고 칼리프의 아내들이었던 아이샤와 하우와는 정치적·문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던 나나는 지식의 공유에 큰 가치를 두었고, 특히 무슬림 여성의 교육을 중요한 과제로 여겼습니다. 이복 오빠가 칼리프로 즉위하자 그녀는 그의 고문이 되었고, 협력 과정에서 여성의 권리, 교육에 대한 접근성, 공동체 내 여성의 위상 같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여성을 위한 종교 교육
나나 아스마우는 약 60편에 달하는 저작을 남겼습니다. 뛰어난 지식인으로 널리 인정받은 그녀는 여러 언어로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풀라니 전쟁(풀라니 지하드)에 대한 기록인 『와카르 게와예(Wakar Gewaye, 여정)』를 비롯해 아랍어, 풀라니어, 하우사어로 수많은 시를 집필했습니다. 이 작품들 대부분은 역사 기록의 성격을 지니지만, 종교와 교육과 관련된 글도 함께 남겼습니다.
1830년경 나나는 야심 찬 여성 종교 교육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지(jaji)'라 불리는 여성 교사 집단을 조직하여 칼리파국 전역을 순회하며 여성들이 가정에서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지들은 나나와 다른 수피 학자들의 저술을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복된 지역 주민들을 이슬람교에 통합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 교육 사업은 점차 가난한 계층과 농촌 주민들에게까지 확대되어 더 많은 여성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교육과 자립의 모범이었던 나나 아스마우는 오늘날 나이지리아 페미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본보기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