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라 프리야다르시니 네루, 흔히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 1917~1984)로 불리는 그녀는 인도의 정치인입니다. 1966년부터 1977년까지 인도의 총리를 지냈으며,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정부 수반이 된 세계 두 번째 여성이자 인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입니다.
총리가 되기까지
인디라 네루는 1917년 11월 19일 인도에서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인도 국민회의 서기장으로서 어린 시절 영국 식민지 당국에 여러 차례 투옥되었지만, 감옥에서 딸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내며 교육을 지켜보았습니다. 푸네에서 학업을 마친 인디라는 유럽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교와 스위스에서 공부한 뒤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1937년,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인도 국민회의에 합류했고, 1942년에는 독립 운동 활동으로 인해 6개월간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페로제 간디(Feroze Gandhi)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1947년 인도가 독립하고 아버지가 초대 총리로 임명되자, 인디라는 아버지의 가장 가까운 참모로 활동하며 곁을 지켰고, 특히 1955년 반둥 회의에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1964년 자와할랄 네루가 세상을 떠나자, 후임 총리 랄 바하두르 샤스트리(Lal Bahadur Shastri)는 인디라를 정보방송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1966년 샤스트리마저 사망하면서, 독립 운동에 대한 공헌과 '네루의 딸'이라는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인디라 간디가 후임 총리로 선출되었습니다.
논란이 된 선거와 비상계엄
정권을 잡자마자 인디라 간디는 인도를 위협하는 기근과 맞서야 했습니다. 그녀는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인도의 정치 노선을 굽히지 않았으며, 식량을 포함해 외세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했고, 진보적인 개혁을 통해 마하라자 등 왕공족들이 누리던 특권을 폐지했습니다. 1970년대 말에는 국민회의 내 좌파와 우파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인디라는 당에서 축출되었고, 지지자들과 함께 신(新)국민회의를 결성했습니다.
1971년 재선에 성공한 인디라는 직책을 통합하며 권력과 권위를 강화했습니다. 당을 장악해 모든 결정을 통제했는데, 이러한 권력 운영 방식과 내부 문제들은 자야프라카시 나라얀(Jayaprakash Narayan)이 주도하는 거대한 반정부 시위 운동을 촉발했습니다. 나라얀은 그녀의 선거에 이의를 제기했고, 1975년 6월 12일 인도 대법원은 선거 과정의 부정 행위를 이유로 그녀의 당선을 무효화했습니다. 같은 해 6월 26일, 인디라 간디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스스로 독재적 권한을 부여했으며 시민의 자유를 크게 제한했습니다. 아들 산제이 간디(Sanjay Gandhi)의 영향력은 커져갔고, 그는 정치적 반대 인사들의 체포에도 관여했습니다. 2년 뒤인 1977년, 그녀는 새 총선을 실시했지만 패배했습니다.
황금사원 학살 사건
후임 정부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인디라 간디는 다시 대중의 지지를 얻었고 1980년 집권에 성공해 한층 온건한 방식으로 통치를 이어갔습니다. 아들 산제이는 계속 그녀를 도왔으나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녀는 다른 아들 라지브(Rajiv)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했습니다.
재집권 기간 동안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공동체 사이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시크교 근본주의 지도자 자르나일 싱 빈드란왈레(Jarnail Singh Bhindranwale)는 시크 공동체의 독립을 주장하며 지지 기반을 넓혀갔지만, 인디라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1984년 6월, 인도군은 시크교의 성지인 황금사원(골든 템플)에 진입해 피신해 있던 시크 무장 세력과 더불어 수백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이른바 '블루 스타 작전'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1984년 10월 31일, 인디라 간디는 시크교도 출신 경호원 두 명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약 30발의 총탄을 맞은 그녀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국가 애도 기간은 12일간 이어졌고, 백만 명이 넘는 인도 국민이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녀의 뒤를 이어 아들 라지브 간디가 총리직을 물려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