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엔 여전사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Buffalo Calf Road Woman)', 혹은 '용감한 여인(Brave Woman)'(1850년대?~1879)은 미국군과의 전투에서 남동생인 '시야에 들어온 자(Chief Comes in Sight)' 추장의 목숨을 구한 용맹함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샤이엔족은 리틀빅혼 전투에서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인물로 그녀를 기리고 있습니다.
인디언 전쟁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에 관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북미 대평원 출신 샤이엔족의 일원으로 1850년대경 태어났으며, '시야에 들어온 자' 추장의 누이이자 '검은 코요테(Black Coyote)'의 아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가 살던 시대는 인디언 전쟁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1864년에는 콜로라도 민병대가 샤이엔족과 아라파호족 마을을 습격해 주민들을 학살하는 샌드크릭 학살 사건이 발생했고, 이 비극은 원주민들의 보복 전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블랙힐스 전쟁
1874년, 커스터 중령이 사우스다코타주 대수 보호구역에 속한 성스러운 산인 블랙힐스에서 금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이 발표는 골드러시를 일으켜 수많은 광부들이 보호구역으로 몰려들었고, 수우족과 동맹 부족들과 미국군 사이의 충돌로 번졌습니다. 이윽고 전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크레이지 호스와 시팅 불 추장은 수우족, 샤이엔족, 아라파호족 6,000~8,000명을 규합했고, 미국군은 조지 크룩 장군, 커스터 중령, 존 기번 장군과 알프레드 테리 장군의 지휘 아래 세 개 부대를 편성했습니다. 1876년 6월, 크룩 장군은 병력 1,000명을 이끌고 로즈버드 크릭 계곡에 진입했습니다.
누이가 동생을 구한 전투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은 크레이지 호스의 지휘 아래 이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전투 도중 '시야에 들어온 자' 추장이 부상을 입고, 철수하는 샤이엔·라코타 전사들에 의해 전장 한가운데 홀로 남겨지고 맙니다. 동생을 버리는 것을 거부한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은 총화살이 날아대는 전장을 가로질러 달려가 추장을 잡아 안전한 곳까지 끌고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용기와 영웅적인 구출 활약은 전사들을 크게 고무했고, 이들은 하나로 결집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공로를 기리며 샤이엔족은 로즈버드 크릭 전투를 '누이가 동생을 구한 전투'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승리는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적에게 입힌 피해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크레이지 호스의 군대가 크룩 장군을 후퇴시킴으로써 커스터 부대와의 합류를 차단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리틀빅혼 전투
일주일 뒤, 크레이지 호스는 약 1,500명의 전사를 이끌고 몬태나주 리틀빅혼 강 인근에서 커스터 중령 휘하 647명과 맞섰습니다.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 역시 남편 검은 코요테와 함께 싸운 전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전투는 원주민 연합군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고, 커스터는 전투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2005년 6월, 리틀빅혼 전투에 대한 공개 구술 행사에서 샤이엔 이야기꾼들은 커스터를 쓰러뜨린 치명타가 바로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쟁의 종말

이후의 전투에서는 미국군이 다시 우세를 회복합니다. 1877년 5월 크레이지 호스가 항복했고, 시팅 불도 4년 뒤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블랙힐스를 무력으로 강탈해 대수 보호구역을 해체한 뒤, 그 땅을 정착민들에게 되팔았습니다.
항복 이후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은 남편과 두 자녀와 함께 북부 샤이엔족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1878년 9월, 그녀와 가족은 보호구역을 빠져나와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고, 이 사건은 '북부 샤이엔족 대탈출(Northern Cheyenne Exodus)'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도피 과정에서 검은 코요테가 샤이엔 지도자 검은 두루미(Black Crane)를 살해하면서 가족 전체가 추방당하는 위기에 처합니다. 이후 그가 미국군 병사 두 명을 공격해 한 명을 죽이자, 가족은 1879년 4월 체포되었고 이 일련의 사건은 '미즈파 크릭 사건(Mizpah Creek incidents)'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버팔로 송아지 길의 여인은 1879년 5월, 감옥에서 디프테리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검은 코요테는 6월 예정된 처형을 앞두고 감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