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 보이스(Antoni Boys)가 그린 릭사 엘리자베스의 초상화
보헤미아와 폴란드의 여왕
릭사 엘리자베스(Ryksa Elżbieta)는 보헤미아와 폴란드의 왕비로, 폴란드 국왕 프셰미슬 2세(Przemysł II)의 외동딸이며 피아스트(Piast) 왕조의 일원이었다. 그녀는 프르제미슬리드(프셰미슬) 왕조 출신인 보헤미아 국왕 벤체슬라우스 2세(Wenceslaus II)의 아내가 되었다.
정략 결혼의 배경
1303년에 체결된 이 결혼은 단순한 개인적인 연합이 아니라 중대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벤체슬라우스 2세는 이미 3년 전부터 폴란드 왕위에 올라 있었는데, 릭사와의 혼인을 통해 대폴란드(Wielkopolska) 지역과 폴란드 왕위에 대한 그의 권리 주장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19세의 두 번째 과부
그러나 이 결혼은 짧게 끝났다. 병약하던 보헤미아·폴란드의 국왕 벤체슬라우스 2세는 1305년 세상을 떠났고, 젊은 릭사는 부유한 미망인으로 남겨졌다. 이듬해인 1306년, 그녀는 새로운 체코의 통치자이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3세(Rudolf III Habsburg)와 재혼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다시 잔혹하게 다가왔다. 루돌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고, 이로써 릭사는 불과 19세의 나이에 이미 두 번의 과부를 겪은 여인이 되었다.
룩셈부르크 지배에 대한 저항
이후 몇 년간 릭사 엘리자베스는 룩셈부르크 가문의 지배에 맞서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보헤미아 내 야권 지도자 중 한 명인 헨리크 오브 리파(Henryk of Lipa)와 손잡았다. 헨리크는 그녀의 정치적 동반자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파트너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 차이와 각종 왕조적·정치적 사정 때문에 그들은 끝내 공식적인 결혼에 이르지는 못했다.
수도원으로의 은퇴와 최후
1329년 헨리크 오브 리파가 세상을 떠난 후, 릭사는 세속의 삶을 뒤로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후 그녀는 독일의 여러 수도원을 순례하는 여정을 떠났으며, 1335년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두 번의 왕비 생활과 한 사람의 평생 동반자, 그리고 격동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모두 겪어낸 그녀의 일대기는 중세 유럽 여성 통치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