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니나 시몬(Nina Simone): 목소리로 저항한 활동가 아티스트

니나 시몬(Nina Simone, 본명 유니스 캐슬린 웨이먼, 1933~2003)은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가, 가수, 작곡가입니다. 화려한 예술 경력뿐만 아니라 미국 시민권 운동의 핵심 인물로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인종차별 사건으로 얼룩진 첫 리사이틀

1933년 2월 21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트라이온에서 태어난 유니스는 가정부였던 어머니 메리 케이트 웨이먼과 세탁소를 운영하던 아버지 존 데이번 웨이먼의 여섯 번째 자녀였으며, 이후 두 명의 동생이 더 태어났습니다. 1929년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은 부모는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지만 재정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가족은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 하나에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유니스는 겨우 3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교회에서 갈고닦은 음악과 노래에서 남다른 재능을 빠르게 드러냈습니다. 스승 무리엘 마시노비치, 이른바 '미시 매지(Miss Mazzy)'와 함께 하루 세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며 집중적으로 훈련했고, '최초의 흑인 클래식 연주가'가 되는 꿈을 키웠습니다.

12세 때 교회에서 처음 리사이틀을 열었지만, 이 무대는 인종차별 사건으로 얼룩이었습니다. 부모가 백인들에게 앞줄 자리를 내주고 뒷자리로 밀려나야 했던 것입니다. 유니스는 부모가 다시 앞자리에 앉을 때까지 연주를 거부하며 조용하지만 강경하게 저항했습니다.

커티스 음악원, 좌절과 새로운 시작

같은 해 미시 매지는 자신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선언했고, 유니스는 여자 기숙학교로 진학해 1950년 졸업 대표(valedictorian)로 졸업합니다. 여러 재정 지원 덕분에 뉴욕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과정을 밟았고, 명문 커티스 음악원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흑인 지원자였던 그녀는 끝내 불합격 통보를 받았고, 실망과 분노를 안고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잠시 사진작가 밑에서 일한 뒤 성악 교사의 반주 피아니스트로 경력을 시작했고, 이후 독립적인 활동을 펼쳤습니다. 번 돈으로 커티스 음악원의 소콜로프(Sokhaloff) 교수에게 개인 레슨을 받았습니다. 레슨비를 마련하기 위해 애틀랜틱시티의 한 바에서 재즈, 블루스, 클래식을 넘나들며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는데, 바로 이 무렵인 1954년 부모에게 이런 활동을 숨기기 위해 '니나 시몬'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녀는 조금씩 자신만의 스타일을 다듬으며 이름을 알려 갔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 돗실한 신앙심을 지닌 어머니는 딸이 부르는 음악의 종류를 알게 된 뒤 관계를 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종차별과 불평등에 맞선 저항의 노래

니나 시몬은 결국 뉴욕의 재능 에이전트에게 발탁되어 계약을 제안받았고, 뉴욕의 클럽 무대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킹 레코드(King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첫 음반을 녹음했는데, 무려 하루 만에 14곡을 완성할 정도로 폭발적인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콜픽스 레코드(Colpix Records)와 손잡고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무대와 음반에서 그녀는 블루스에서 재즈, 가스펠, 포크, 클래식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폭넓은 음악 세계를 선보였습니다.

1961년에는 앤드류 스트라우드와 결혼해 다음 해 딸을 낳았습니다. 1964년 네덜란드 음반사 필립스(Philips)와 계약한 뒤, 첫 앨범부터 미국의 인종차별과 인종 불평등 문제를 공공연히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메드거 에버스의 암살, 버밍엄 교회 폭탄 테러, 인종 분리 법령 같은 현실을 곡에 담았습니다. 그녀는 셀마 행진 같은 대규모 집회에서 목소리를 내며 시민권 운동에 점점 더 깊이 뛰어들었고, 마틴 루터 킹이 지향했던 비폭력 혁명의 정신을 담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I Put a Spell on You』와 유배 같은 망명 생활

1970년, 니나 시몬은 이미 매니저가 되어 있던 남편과 미국을 떠나 바베이도스로 향합니다. 미국으로 돌아왔다가,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대한 항의로 납부를 거부한 세금 때문에 수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검찰의 추적을 피해 다시 바베이도스로 돌아간 뒤 라이베리아, 스위스, 네덜란드를 차례로 거쳐 마침내 프랑스에 정착했습니다. 1974년과 1978년에 새 앨범 두 장을 발표했고, 같은 해 세금 미납 혐의로 잠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파리에 머무르며 소극장에서 몇 차례 공연을 가졌고, 1984년에는 런던의 한 재즈 클럽에서 새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1992년에는 자서전 『I Put a Spell on You』를 출간했으며, 이듬해 마지막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이후 니나 시몬은 프랑스 남부로 이주했습니다. 1999년에는 더블린 음악상에서 평생의 업적을 인정받았고, 2002년 7월 폴란드에서 인생 마지막 무대에 섰습니다.

니나 시몬은 2003년 4월 21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노래와 저항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