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HIV 퇴치의 개척자, 글렌다 그레이의 평생 투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HIV 전문 소아과 의사 글렌다 엘리자베스 그레이(Glenda Elisabeth Gray, 1962년생)는 모자 간 HIV 감염 예방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한 인물입니다. 2017년에는 독자들의 투표로 노벨 의학상 후보로 지지받기도 했습니다.

HIV 퇴치의 개척자, 글렌다 그레이의 평생 투쟁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다

회계사였던 어머니와 광부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글렌다 그레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동부의 광산 도시 복스버그(Boksburg)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과 다섯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흑인 공동체에 속한 가난한 지역에서 생활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글렌다는 부모의 격려 속에 위트워터스랜드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소아과를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강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었던 그녀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병원 내 인종 차별 철폐 캠페인에도 앞장섰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시위 현장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고, 활동가들에 대한 폭력 행위를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등 헌신적으로 활동했습니다.

HIV 유행병과의 만남

의사로 일하면서 글렌다는 HIV로 인한 최초의 환자들과 사망자들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첫 환자를 살리지 못했을 때 느낀 무력감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1993년 소아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을 무렵, 에이즈는 이미 전국으로 확산되어 입원한 어린이들의 제1의 사망 원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글렌다는 HIV 예방 캠페인에 참여하며, 처음에는 연구 계획이 없었음에도 모자 간 HIV 전파를 막는 방법에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동료와 함께 임산부에게 검사와 상담을 제공하는 HIV 전용 주산기 클리닉을 설립했고, 이 클리닉은 1996년 '주산기 HIV 연구소(Perinatal HIV Research Unit)'라는 연구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정부와의 대립

글렌다의 첫 논문은 당시 통설과 달리, 개발도상국의 산모들이 모유 수유 대신 인공 우유를 사용함으로써 HIV 전파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출산 시 전파를 막는 약물(지도부딘, Zidovudine)이 개발되자, 그녀는 이 치료법이 너무 비싸고 기간도 길어 개발도상국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더 효과적이면서 저렴한 약물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결실을 맺으려던 무렵, 정부가 병원에 약물을 배포하는 것을 거부하며 큰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정부 내 일각에서는 에이즈의 원인이 HIV가 아니라 빈곤이라 주장하며 약물 도입에 반대했습니다. 글렌다는 약물 보급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만 했습니다.

2001년, 그녀는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습니다. 이듬해에는 모자 간 HIV 전파 방지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넬슨 만델라로부터 '넬슨 만델라 건강 및 인권상(Nelson Mandela Health and Human Rights Award)'을 받았습니다. 만델라의 지지, 수상, 소송이 하나둘씩 여론의 관심을 불러모았고, 같은 해 말 결국 법원은 글렌다 측의 손을 들어주며 약물 배포를 허용했습니다.

백신 개발을 향하여

2008년 제이콥 주마(Jacob Zuma)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HIV 퇴치 정책이 대폭 강화되었고, 항레트로바이러스제의 보급도 확대되었습니다. 2013년 글렌다 그레이는 HIV 전파 방지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최고 훈장인 '매풍구브웨 훈장(Order of Mapungubwe)'을 수훈했습니다. 그 결과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나는 아이의 수는 극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성인에게 효과가 있는 백신을 개발해 아이들까지 예방 접종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HIV 예방 백신 연구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습니다.

글렌다 그레이는 2014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Time 10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