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노예의 딸로 태어난 루실 버클리 뷰캐넌 존스(1884~1989)는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 콜로라도 대학교를 졸업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강인한 의지와 끈기를 지닌 그녀는 스스로 교사가 되어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주의: 자살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노예의 딸

루실 버클리 뷰캐넌은 1884년 6월 13일,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지 약 20년 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사라 라비나 비숍 뷰캐넌과 제임스 펜턴 뷰캐넌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 모두 버지니아주의 플랜테이션에서 노예로 태어난 분들이었으며, 어머니 사라는 플랜테이션 소유주였던 에드먼드 버클리의 딸로 추정됩니다.
1872년 버지니아에서 결혼한 사라와 제임스는 네 딸(해티, 한나, 로라,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요절한 딸)과 아들 펜튼 머서를 낳았습니다. 1882년 뷰캐넌 가족은 덴버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해당 지역에 부동산을 소유한 최초의 흑인 가족이 되었습니다. 덴버에서는 다섯 명의 자녀가 더 태어났습니다. 루시, 새디, 에디스, 넬리, 그리고 클래리벨입니다. 훗날 루시는 자신의 이름을 '루실'로 바꾸게 됩니다.
첫 교직 경력
인종 차별이 일상이던 환경 속에서 공부해야 했던 루실과 형제자매의 길은 험난했습니다. 1899년, 루실이 열일곱 살이던 해에 언니 로라가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이어가던 중 자살했습니다. 콜로라도의 주요 신문 록키 마운틴 뉴스는 이 비극을 '인종 차별이 소녀를 자살로 몰았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비극이 있고 2년 뒤인 1901년, 루실 뷰캐넌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잠시 고등학교에서 대체 교사로 일했고, 이후 출판사에서 근무했습니다. 2년 후, 언니 로라의 꿈을 이루고자 그리리에 있는 콜로라도 주립 사범학교(현재 노던 콜로라도 대학교)의 교사 연수 과정에 진학했습니다. 그녀는 반에서 유일한 흑인 학생이었으며, 1905년 이 학교를 졸업한 최초의 흑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갓 받은 졸업장에도 불구하고 루실은 콜로라도에서 교사 자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1,500km나 떨어진 아칸소주 리틀록으로 건너가야만 아칸소 침례교 대학(Arkansas Baptist College)에서 교사로 채용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1908년 덴버의 교사 자리에 다시 지원했지만, 또다시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 졸업
아칸소주 핫스프링스의 유일한 흑인 고등학교에서 3년간 가르친 뒤, 루실 뷰캐넌은 자신의 역량을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그리스어, 독일어, 영어를 공부했습니다. 1년을 보낸 후에는 독일어 실력을 완성하기 위해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로 옮겼습니다.
1918년, 루실은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를 졸업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 되었습니다. 미국 전역에 인종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결코 작지 않은 위업이었습니다. 비록 대학 자체는 통합적이고 분리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름은 동기들의 졸업 앨범에 단 한 번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졸업식에서도 무대에 올라 졸업장을 받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받은 대우에 깊이 상처받은 루실은 다시는 이 대학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고, 평생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
졸업 다음 해, 루실 뷰캐넌은 캔자스시티의 인종 분리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자리를 얻었습니다. 약혼한 상태에서 그녀는 전국 유색인종 지위 향상 협회(NAACP) 지역 청년 지부의 고문을 맡아 활동했습니다. 1925년에는 학교 최초의 신문을 창간하고 토론 동아리를 만들어, 학생들이 국제 정세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습니다.
다음 해인 1926년, 루실은 미국 우정청 직원인 존 도타 존스와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35년 존이 집을 나갔고, 루실은 이혼을 신청했습니다. 1940년, 간통, 극단적이고 반복적인 학대, 유기, 알코올 중독을 이유로 이혼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혼한 성을 죽음이 올 때까지 계속 사용했습니다.
평생을 이어간 교사의 삶
1925년 루실 뷰캐넌은 시카고로 돌아와 공립학교 시스템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긴 교직 경력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녀 스스로 배움을 멈추지 않고 교육 역량을 끊임없이 키워나갔습니다. 1937년, 53세의 나이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영문학 강좌를 수강하기도 했습니다.
루실은 교사의 의무 은퇴 연령인 65세에 은퇴한 뒤 덴버의 가족 집으로 돌아가 남동생 펜튼과 함께 살았습니다. 펜튼은 14년 뒤 세상을 떠났고, 루실의 건강과 시력은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1986년, 그녀는 요양원에 모셔져 말년을 보냈습니다. 루실 뷰캐넌은 1989년 11월, 10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8년, 그녀가 무대에 오르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던 졸업식 100주기를 맞아, 콜로라도 대학교는 드디어 루실 뷰캐넌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