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84. 인도의 철인 사르다르 파텔, 독립 전 550개 군주국을 인도에 통합하다

84. 인도의 철인 사르다르 파텔, 독립 전 550개 군주국을 인도에 통합하다

차례로 서명에 나선 인도의 군주들

인도 연방 가입 문서(편입 선언서, Instrument of Accession)에 서명하기 위해 인도 각지의 왕들이 줄을 지어 찾아왔다. 일부 번왕국은 병합을 받아들였지만 그 과정은 쓴맛으로 가득했다. 중부 인도의 한 번왕은 편입 문서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쓰러져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고, 바로다의 마하라자는 서명을 마친 뒤 통합 업무를 담당한 V.P. 메논의 목을 감싸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트라반코어의 저항과 암살 미수 사건

보팔은 중부 인도 번왕국들의 연방을 구성하려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트라반코어가 편입 문서 서명을 거부하자, 사르다르 파텔의 지시에 따라 트라반코어 주민들은 마하라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거리에서 트라반코어 경찰과 맞서 싸웠고, 7월 29일에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트라반코어 번왕국의 총리인 C.P. 라마스와미 아이예르를 흉기로 습격해 크게 다치게 했다. 라마스와미는 얼굴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단 한 번의 습격이 바꾼 운명

습격범은 도주에 성공했지만, 이 사건은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마하라자는 곧바로 부총재에게 전보를 보내 서명할 준비가 되었다고 알렸다. 사르다르 파텔은 지역 의회 위원회에 마하라자 반대 시위를 중단하라고 명령했고, 트라반코어는 인도에 편입되었다.

번왕국들을 뒤흔든 파문

트라반코어의 사태는 다른 번왕국 군주들에게 마법 같은 효과를 냈다. 그들은 큰 교훈을 얻었고, 더 많은 번왕국이 잇달아 서명에 나섰다. 하이데라바드, 보팔, 조드푸르, 인도르의 통치자들도 이 사건에 크게 흔들렸다. 그들 역시 자신의 미래가 암담해 보였지만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총재의 중재와 마지막 설득

부총재는 보팔, 조드푸르, 인도르의 군주들 또는 그들의 재상을 불러 협상에 나섰다. 이 회담의 결과로 조드푸르와 인도르의 군주들은 인도 가입을 수용했다.

독립과 함께 남은 과제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독립했다. 당시 566개 인도 번왕국 가운데 12개국, 즉 바할왈푸르, 카이르푸르, 칼라트, 라스벨라, 마크란, 카란, 암브(타나왈), 치트랄, 훈자, 디르, 나가르, 스와트는 파키스탄 영토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파키스탄에 속하게 되었다. 나머지 554개 번왕국은 인도에 남았다.

이 가운데 주나가드(사우라슈트라), 보팔, 하이데라바드(남인도), 잠무·카슈미르를 제외한 550개 번왕국은 사르다르 파텔의 노력 덕분에 1947년 8월 15일 이전에 인도 연방 가입에 동의했다. 반면 주나가드, 하이데라바드, 보팔, 잠무·카슈미르는 인도 편입에 동의하지 않았다.

영국 국왕도 인정한 통합의 성과

인도 통합의 성과에 만족을 표하며 조지 6세는 이렇게 기록했다. "거의 모든 인도 번왕국이 어느 한쪽 자치령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 어떤 국가도 세계에서 홀로 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후 주나가드는 주민 투표를 통해, 하이데라바드는 1948년 '폴로 작전'이라 불리는 군사 행동을 통해 인도에 통합되었고, 잠무·카슈미르는 1947년 10월 파키스탄계 부족민의 침공 이후 인도 가입 문서에 서명했다. 이 거대한 통합 과정을 이끈 사르다르 파텔은 '인도의 철인(Iron Man of India)'이라 불리며 오늘날까지 기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