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33. 사다르 파텔(Sardar Patel), 케다 사티아그라하로 증명한 사티아그라하의 힘

33. 사다르 파텔(Sardar Patel), 케다 사티아그라하로 증명한 사티아그라하의 힘

케다(Kheda) 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중, 간디는 다시 참파란(Champaran)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에 따라 운동 지도의 모든 책임이 발라브바이(Vallabhbhai) 한 사람의 어깨에 얹히게 되었습니다.

농민들의 사기를 지킨 확고한 리더십

발라브바이는 이 무거운 책임을 흔들림 없이 성실하게 수행해 나갔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마을로 직접 발걸음을 옮기며 농민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정부의 가혹한 탄압을 두려워하지 말고, 소작료 납부를 끝까지 거부해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운동은 예상보다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발라브바이는 결코 중간에 무너지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양보와 운동의 종결

마을 곳곳에서 정부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한 당국은 결국 물러섰습니다. 정부는 소작료를 낼 형편이 되지 않는 농민들의 납세 의무는 면제하고, 실제로 납부 능력이 있는 농민들에게만 징수하겠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한 것입니다. 이 선언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더 이상의 어려움이 없었고, 그리하여 케다 운동은 목표를 달성한 채 종결될 수 있었습니다.

케다 사티아그라하가 남긴 두 가지 의미

케다 사티아그라하는 인도 독립운동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사티아그라하가 정부에 대항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효과적인 투쟁 방법임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이 운동을 통해 발라브바이가 지역 지도자를 넘어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했다는 점입니다. 비록 이것이 사다르 파텔의 첫 번째 승리였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나디아드에서 열린 성대한 종결식

케다 사티아그라하의 종결식은 1918년 6월 29일 나디아드(Nadiad)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으며, 간디 역시 이 자리에 함께했습니다. 거대한 축하 행진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공개 집회도 함께 열렸습니다. 나디아드 시민들은 행진 경로를 따라 아낌없이 꽃을 흩뿌리며 참가자들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공개 집회에서는 간디에게 영예의 서신이 전달되었고, 간디는 연설을 통해 이번 운동의 성공에 대한 모든 공을 발라브바이에게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