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가즈니 군대, 아제르의 라지푸트족에게 퍼부은 끔찍한 복수!

가즈니 군대, 아제르의 라지푸트족에게 퍼부은 끔찍한 복수!

고(故) 프리트비라지 차우한 왕의 아들 고빈다라지를 아제르의 왕위에 앉힌 뒤 샤하부딘 고리가 델리로 돌아가던 무렵, 한 명의 거물급 차우한 지도자가 한시(Hansi) 근처에서 무함마드 고리의 진로를 가로막았습니다. 『타즐 마시르(Tajul Masir)』의 저자 하산 니자미는 이 차우한 지도자의 이름이나 신상에 관한 세부 정보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산 니자미에 따르면 이 지도자는 쿠틉우딘 아이바크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한편 일부 문헌에서는 이 인물을 프리트비라지의 장남 라인시(Rainsi)로 기술하며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프리트비라지의 아들 중 라네시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없었다는 점이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한시 근처에서 무함마드 고리를 막았던 그 전사는 프리트비라지의 아들이 아니라 별개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이름이 실제로 라네시였고, 바트(Bhat) 계열 음유시인들이 그를 프리트비라지의 아들로 미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산 니자미와 파리슈타는 샤하부딘 고리가 정복한 인도 영토의 총독으로 쿠틉우딘 아이바크를 임명하고 가즈니로 떠나자, 프리트비라지의 동생 하리라지가 고빈다라지를 시해하고 스스로 아제르의 왕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고빈다라지가 무슬림에게 항복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프리트비라지의 형제 이름은 히라지가 아니라 하리라지가 정확합니다.

이 사건 당시 쿠틉우딘 아이바크는 바나라스, 칸나우지, 코엘 지역 전역에서 분주히 활동 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고빈다라지에게 어떠한 지원도 해줄 수 없었고, 결국 고빈다라지는 아제르 요새를 버리고 란탐보레(Ranthambore)로 피신했습니다.

고빈다라지가 아제르를 떠나 란탐보레로 이동하자 숙부 하리라지는 곧바로 란탐보레를 포위했습니다. 고빈다라지는 다시 쿠틉우딘 아이바크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쿠틉우딘의 군대가 도착하자 하리라지는 포위를 풀고 아제르로 물러났습니다.

1195년, 아제르의 재점령

서기 1194년, 하리라지는 장군 차트라지를 델리 공격에 파견했으나 쿠틉우딘 아이바크에게 대패했습니다. 패전한 차트라지가 아제르로 후퇴하자 쿠틉우딘 아이바크는 그를 추격하여 군대를 이끌고 아제르까지 진격, 타라가르(Taragarh) 요새를 포위했습니다. 하리라지는 직접 나서 맞섰지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함미르 서사시』에 따르면, 패색이 짙어지자 하리라지와 장군 자이트라 싱은 여성들을 포함한 무리와 함께 산 채로 불길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서기 1195년 아제르는 다시 무슬림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하리라지 사후 쿠틉우딘 아이바크는 아제르를 고빈다라지에게 돌려주되 무슬림 총독의 감독 아래 두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차우한 제국이 몰락한 뒤에도 차우한 통치자들이 설립한 조폐소는 계속 가동되어 델리 술탄의 이름을 새긴 화폐를 주조했습니다.

서기 1196년, 쿠틉우딘 아이바크는 델리의 술탄이 되었고, 사이이드 후세인 칸가 사와르 미란 사히브를 아제르의 감독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로써 아제르의 차우한 세력은 12세기 말 역사의 배후로 밀려났습니다. 샤캄바리 왕조는 소멸했고, 하늘세계에 필적한다던 그들의 수도 아제르의 영광도 함께 사라져 갔습니다.

1202년 밤, 라지푸트의 반격

서기 1202년 4월 12일 밤, 타라가르 일대에 거주하던 라토르(Rathore)족과 차우한족이 아제르 요새를 기습했습니다. 그들의 계획은 요새에 주둔한 무슬림 장교 사이이드 후세인 미란을 제거하고 라지푸트의 지배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양측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요새 내부에 주둔하던 무슬림 병사들은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라지푸트들은 감독관 사이이드 후세인 칸가 사와르 미란마저 처형했습니다. 이렇게 아제르 요새는 다시 한번 힌두교도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가즈니 군대의 참혹한 보복

요새에서 탈출한 무슬림 병사들이 이 소식을 델리에 전하자, 쿠틉우딘 아이바크는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단독으로 요새를 탈환할 만큼의 병력이 없었던 그는 가즈니에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가즈니에서 도착한 대군은 라지푸트로부터 빌틀리 요새를 다시 빼앗고 아제르에서 대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가즈니 군대의 이 보복은 그야말로 참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가즈니 군대는 타라가르에 주둔하던 라지푸트 병사들을 모두 학살한 뒤, 요새 인근에 살던 라지푸트 가족들을 포로로 잡고 할례를 강행해 이슬람으로 개종시켰습니다. 개종 후 이들은 타라가르 근처에 정착했고, 훗날 '데시발리 무슬림(Deshwali Muslims)'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즈니와 고르 출신 무슬림들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가즈니 출신 무슬림들은 현지 출신 무슬림에게 대등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군대 입대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현지 무슬림들은 방치된 삶을 이어갔고 경제 상황도 날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이렇게 아제르에는 가난의 씨앗이 뿌려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이야기 – 불과 몇 년 만에 광대한 차우한 제국은 튀르크의 손아귀에 들어갑니다!

- 모한랄 굽타(Mohanlal Gupta)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