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BC 69~30)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BC 69~30)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클레오파트라'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BC 69~30): 이집트의 마지막 독립 여왕

클레오파트라 7세 필로파토르(Cleopatra VII Philopator)는 고대 이집트를 다스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이집트 역사상 마지막 독립 여왕입니다. 그녀는 기원전 51년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가 사망하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공동 통치자로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궁정 음모와 추방, 그리고 복귀

기원전 49년, 궁정 권신들의 음모로 인해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에서 쫓겨나 팔레스타인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직접 조직한 군대가 동생의 군대와 맞서기 위해 함선에 승선해 있던 시기,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쫓기던 폼페이우스가 이곳에 도착했고,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지지자들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이 사건은 카이사르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누이인 클레오파트라와 화해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의 로맨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자 반란이 일어났지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에서 파견된 원군 덕분에 무사히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기원전 47년에 사망했고,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가 또 다른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함께 이집트를 통치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유명한 로맨스가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47년 중반, 그녀는 카이사르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카이사르, 이른바 '카이사리온'으로 알려진 아기를 낳았습니다. 기원전 46년에는 로마로 건너가 약 2년간 머물렀습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만남, 그리고 제국의 확장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 이집트로 돌아온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14세의 제거를 명령하고,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스스로 통치에 나섰습니다. 기원전 42년 필리피 전투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승리한 후, 그녀는 타르수스에서 그를 만났고, 이 만남에서 두 사람의 로맨스가 싹텄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 사이에서 쌍둥이 알렉산드로스 헬리오스와 클레오파트라 셀레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필라델포스 등 세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 시기 키프로스와 크레타 섬 일부를 포함한 새로운 영토가 이집트에 편입되었으며, 왕국은 한층 강성해졌습니다.

악티움 해전과 비극적 최후

그러나 기원전 31년 9월 2일, 안토니우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기원전 30년에는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이집트에 입성했습니다.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할 희망을 보지 못한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30년 8월 12일, 아마도 독약을 마시는 방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막을 내렸고,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