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푸키에탱빌 앙투안 캉탱(1746~1795): 단두대를 지휘한 혁명재판소 검사관

푸키에탱빌 앙투안 캉탱(1746~1795): 단두대를 지휘한 혁명재판소 검사관

앙투안 캉탱 푸키에탱빌(Antoine Quentin Fouquier de Tinville, 1746~1795)은 프랑스 혁명기 혁명재판소의 공공검사관으로, 공포정치(La Terreur) 시대 가장 두려움을 받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카미유 데물랭의 사촌, 혁명재판소로

그는 혁명가 카미유 데물랭의 사촌으로, 데물랭의 도움으로 배심원단 감독 자리를 얻으며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빠르게 가속화되어 혁명재판소의 공공검사관으로 임명되며 혁명 정의의 최전선에 섰다.

단두대의 '공식 공급자'

무자비하기로 악명 높았던 그는 수많은 사형 판결을 이끌어내며 단두대의 '공식 공급자'라 불렸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지롱드파 의원들, 그리고 에베르파와 당통파 등 각종 대중 세력을 차례로 처형대로 보냈다. 그러나 그는 무분별하게 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밀한 기소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철저하고 꼼꼼한 업무 방식으로 공포정치의 행정적 얼굴이 되었다.

프레리알 법에 대한 반대

흥미롭게도 그는 피고인의 방어권마저 박탈해 버린 1794년 프레리알 법률에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극단적으로 축소된 재판 절차가 검사관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통제력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몰락과 처형

1794년 7월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로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자 그의 운명도 급격히 뒤집혔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그는 1795년 5월, 공포정치 시절 함께 활동했던 혁명재판소 동료들과 함께 단두대에서 생을 마쳤다. 수많은 사람을 처형대로 보내온 그가 결국 스스로 같은 단두대 위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