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목숨을 노린 수사, 자크 클레망
자크 클레망(Jacques Clément)은 도미니코회 소속의 수사였다. 그는 극단적으로 열정적인 가톨릭 신앙인으로, 프랑스 종교전쟁 기간 동안 가톨릭 진영인 가톨릭 동맹(Catholic League) 편에 섰다.
그의 표적은 앙리 3세(Henri III) 국왕이었다. 앙리 3세는 교황에 의해 파문당한 데다, 가톨릭 세력의 구심점이던 기즈 공작(Duke of Guise)의 암살을 지시한 인물이었다. 클레망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왕 암살 계획을 세우기에 이른다.
생클루에서 벌어진 비극
1589년, 클레망은 생클루(Saint-Cloud)에서 앙리 3세와 마주하게 된다. 그는 국왕에게 중요한 기밀 서신을 전달하겠다는 핑계로 몸소 접근했고, 순진하게도 국왕은 그를 맞이했다.
그러나 서신 대신 그가 꺼낸 것은 감춰 두었던 칼이었다. 클레망은 갑작스럽게 칼을 뻗어 왕의 배를 찌르고 말았다. 상처를 입은 앙리 3세는 "악당 수사여, 네가 나를 죽였구나!"라며 외쳤다고 전해진다.
곧바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왕실 근위대 '마흔다섯 용사(Les Quarante-Cinq)'는 수사의 몸에 검을 여러 차례 찔러 현장에서 그를 죽였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앙리 3세는 부상이 회복되지 못한 채 이튿날 밤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후 처벌과 반대 반응
클레망의 시신에는 왕살해자(regicide)에 대한 사후 처벌이 집행되었다. 그의 시신은 거열형에 준하여 사지가 절단된 뒤 불태워졌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암살 소식에 대한 반응은 첨예하게 갈렸다. 가톨릭의 요충지였던 파리에서는 이 소식이 격렬한 환호 속에 받아들여졌고, 교황 식스토 5세(Sixtus V)조차 클레망을 성인으로 시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큼 그의 행위를 찬양했다.
자크 클레망의 행위는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자발적' 왕살해 사건으로 기록되며, 그의 죽음 이후 나바르의 앙리가 앙리 4세로 즉위하면서 부르봉 왕조가 개막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