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드러냈을까?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의 목격자, 프로코피우스

비잔틴 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Procopius)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년)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로, 황제의 통치를 직접 목격하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술은 중립적인 기록이라기보다 황제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드러나는 편향된 서술로 유명합니다. 특히 익명으로 집필한 『비사(秘史)』에서 유스티니아누스를 극렬하게 비판했는데, 그의 편견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1. 비하적인 언어 사용

프로코피우스는 유스티니아누스를 지칭할 때 모욕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황제를 "가장 경멸스러운 인간", "무가치하고 비겁한 악당", "악마의 화신" 등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은 황제에 대한 그의 깊은 증오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2. 부정적 사건의 과장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통치기의 실패와 문제점을 과장하고 선정적으로 부각하는 한편, 성과는 축소하거나 무시했습니다. 군사적 패배나 행정상의 결함은 생생하고 상세하게 서술하는 반면, 의미 있는 승리와 업적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습니다.

3. 긍정적 정보의 누락

프로코피우스는 유스티니아누스에게 유리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생략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별도의 저작 『건축론』에서 성소피아 대성당을 포함한 대규모 건축 사업을 찬양했지만, 『비사』에서는 이러한 업적을 외면합니다. 또한 로마법을 체계화한 『민법대전』 편찬 사업은 이후 수백 년간 유럽 법체제의 초석이 된 위대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판적 서술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습니다.

4. 스캔들과 부패의 부각

그는 궁정 내부의 스캔들과 부패 혐의를 대서특필하며, 유스티니아누스를 아내인 테오도라 황후에게 휘둘리는 약한 군주로 그렸습니다. 테오도라는 무자비하고 타락한 여인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런 서술에는 일부 사실이 담겨 있을 수 있지만 유스티니아누스를 실추시키기 위해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5. 유스티니아누스의 적에 대한 찬양

반면 프로코피우스는 황제와 갈등을 빚거나 대립한 인물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 같은 장군들의 군사적 재능과 충성심을 높이 칭송하며, 황제와 대비되도록 그들을 우호적으로 조명했습니다.

6. 선택적 역사 서술

프로코피우스는 자신의 부정적 묘사를 뒷받침하는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고, 황제를 긍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건들은 최소화하거나 무시했습니다. 이러한 선택적 서술은 독자가 유스티니아누스 통치기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왜곡합니다.

결론: 비판적 독해가 필요한 사료

결국 프로코피우스의 편견은 비하적인 언어, 선택적 기술, 부정적 사건의 과장, 황제의 정적에 대한 찬양 등 곳곳에 드러납니다. 물론 그의 저술은 당대를 생생하게 전하는 귀중한 1차 사료라는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인물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짙게 배어 있는 만큼, 유스티니아누스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다른 사료들과 균형 있게 비교·분석하는 비판적 독해가 필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