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발명은 19세기 말부터 이어진 수많은 발견과 발명의 긴 여정이 결실을 맺은 정점이었습니다. 1926년 1월 26일, 스코틀랜드 발명가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가 세계 최초로 TV 영상의 공개 시연을 성공하며 텔레비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열렸습니다. 비밀스럽게 개발되어 한동안 흑백 화면에 머물렀던 텔레비전은 1950년대부터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컬러 화면을 갖추고 대부분의 가정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대중 매체의 대명사가 된 TV는 2000년대부터 광범위한 디지털화를 거치며 정보와 오락을 전달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게 됩니다.
텔레비전의 발명, 선구자들의 여정
텔레비전의 탄생 뒤에는 여러 선구자들의 업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873년 윌로비 스미스(Willoughby Smith)가 셀레늄의 광전도성을 발견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습니다. 1880년에는 프랑스의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텔레비전의 기본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이어 1884년 독일 엔지니어 파울 닙코프(Paul Nipkow)가 영상을 전송하기 위한 최초의 기계식 스캐닝 장치인 닙코프 디스크를 개발했고, 이 회전 디스크 방식은 1889년 독일의 율리우스 엘스터(Julius Elster)와 한스 가이텔(Hans Geitel)이 광전지를 발명하면서 한층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그들의 동포인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은 1897년 결정적인 발명품인 음극선관(CRT)을 개발했으며, 이 과학적 업적을 인정받아 190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1926년 베어드의 공개 시연에 이어, 러시아 출신 미국 발명가 블라디미르 즈워리킨(Vladimir Zworykin)은 음극선관 화면을 이용한 키네스코프(kinescope)를 공개하며 텔레비전의 대중화에 결정적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이보다 현대적이고 완성도 높은 이 장치는 특히 영국 기업 E.M.I.가 채택해 1936년 BBC 방송에 운용되었습니다. 이는 베어드가 1930년 큰 성공 없이 판매한 최초의 가정용 텔레비전 수상기 '텔레비저(Televisor)'를 능가하는 결과였고, 이후 1941년 초 미국 시장에도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컬러 텔레비전은 미국에서는 1953년, 유럽에서는 1960년대 초에야 빛을 보게 되었으며, 중계위성의 등장은 장거리 전송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텔레비전의 역사: 대중 매체로의 도약
텔레비전의 개발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전자 자원이 군사 목적으로 동원되면서 잠시 중단되었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재개되었습니다. 거대 전자 기업 RCA(미국 라디오 공사)는 미국 텔레비전 산업의 초석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1960년대 초에는 미국 가구의 88%가 텔레비전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 부문의 광고 시장 규모는 연간 13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르면 1937년 에펠탑 꼭대기에 송신기가 설치되어 최초의 생방송 중계가 이루어졌지만, 만국박람회부터 이어진 통신에 대한 국가 독점이 프랑스 텔레비전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었습니다. 공영 방송 기구 ORTF는 오랫동안 제한된 수의 채널과 방송 시간만을 제공했고, 매일 저녁 프랑스인의 거실을 찾는 정부의 공식적인 목소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a piste aux étoiles>(별의 무대)나 <Cinq colonnes à la une>(1면의 다섯 개 기둥) 같은 인기 프로그램들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60~70년대에 접어들며 텔레비전의 역사는 가속화되었습니다. 1969년 7월 21일, 인류가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의 생방송 중계는 전 세계 6억 명이 넘는 시청자가 지켜본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이는 매스 텔레비전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이후 새로운 채널들의 등장은 본격적인 경쟁과 시청률 전쟁의 시대를 열었고, 시청자들의 요구는 낡은 독점 체제와 공영 방송의 교육적 지향보다 우선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시청각 매체를 규율하는 새로운 규제 기관이 창설되면서 텔레비전은 더 큰 독립성을 확보하게 되었고, 시청각 언론의 다원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1983년 암호화 유료 채널 Canal+의 출범을 시작으로 채널 수가 꾸준히 늘어났으며, 1986년에는 케이블 사업 계획과 위성방송 협상이 다시 추진되는 가운데 La Cinq와 TV6(1987년 M6로 개명)라는 두 개의 상업 방송이 등장했습니다. 같은 해, 프랑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채널인 TF1이 민영화되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TV: 시청 방식의 혁명
1980년대 중반 민간 부문에 대한 개방은 텔레비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서비스의 양은 늘어난 반면 품질이 항상 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2005년부터 지상파 디지털 방송(DTT)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디지털 기술이 보급·일반화되면서 텔레비전의 소비 방식은 근본적으로 뒤바뀌었습니다. 1997년 설립된 넷플릭스(Netflix)를 필두로 한 주문형 시청(VOD) 서비스와 팟캐스트의 대중화는, 20세기 미디어 환경을 지배했던 정해진 시간의 스트리밍 소비 방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미디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커지고 얇아진 TV 화면은 이제 스마트폰 등 다른 미디어와 치열한 시청자 확보 경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 국립시청각연구소(Ina) 공식 웹사이트
- 『프랑스 텔레비전의 역사: 1935년부터 현재까지』, 모니크 소바주(Monique Sauvage) 저, 포켓 히스토리, 2014.
- 『놀라운 발명의 역사: 불의 정복부터 불멸까지』, 두노드(Dunod), 2018.